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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머지'에 해당되는 글 77건

  1. 2014.10.19 손자 이야기
  2. 2014.10.06 일요일에 음악올리기
  3. 2014.09.18 깊은 산속 옹달샘
  4. 2014.02.27 오랫만에 들어와 본 내 블로그
  5. 2014.01.05 토정비결
  6. 2013.12.29 가수 이미자
  7. 2013.12.26 아직도 못다한 사랑
  8. 2013.12.24 Merry Christmas !!
  9. 2013.08.31 디지털 치매
  10. 2013.08.29 건배사
2014. 10. 19. 23:42 그나머지

손자 이야기

 

내가 벌써 손자가 둘

명실공히 할아버지다.

 

아들녀석이 낳은 친손녀 하나

딸아이가 낳은 외손자 하나

 

딸아이 집에 머물고 있어 매일 보는 외손자는

현재 생후 19개월로 재롱이 한참이다.

 

요녀석이 한동안 엄마, 아빠를 불러대더니

요즈음엔 합비, 함미를 새로 배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에 그리 즐거운지

자기가 아는 단어를 모두 모아 노래를 부른다.

짹짹, 붕붕, 엄마, 아빠, 엄미, 합비, 함미..

제법 음의 고저에 가락까지 붙여가며 불러댄다.

 

기저귀 갈자하면 지혼자 발랑 눕고

우유 먹을땐 이불에 누워 웅얼거리며 빨고

응가를 할땐 혼자 숨어 볼 일을 본다.

 

뽀뽀해 달라면 입술을 주욱 내밀고

서로 헤어질 땐 빠이빠이

그 서운한 눈빛에 정말 내 가슴은 미어진다.

 

한동안 지나가는 모든 자동차에게 빠이빠이

땅바닥을 기어가는 개미에게도 손을 흔들더니

이즈음엔 붕붕(자동차)이 그려진 옷만 입겠다고

생떼를 쓴다.

 

남들은 손자사랑 짝사랑

언젠가는 상처받는다며 시샘을 하지만

지금의 우리 손자

천사처럼 귀엽고 귀한 나의 분신이다.



퇴근후 내 양말을 벗겨주는 귀여운 녀석 -붕붕이 그려진 내의를 입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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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발노인
2014. 10. 6. 00:52 그나머지

지난 주엔 감기 걸려 고생하면서

전주장학숙에 다녀왔고


장수에 들러 공사해 놓은 것 새롭게 조정하고

익산 태양광에 가서는 버섯목 들여놓은 것 확인하고


서울에 올라와 6개학사 체육대회 둘러보고

어제는 모처럼만에 여의도 성당에 가서

성가대 사람들 만나 성가연습 그리고 한잔...


꽤나 바쁜 날들을 보냈네..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최소 한편 포스팅도 힘들군.


예전엔 일요일에 노래 한곡씩 올렸었는 데...

그래서 월요일 새벽이지만 동영상 음악이라도 하나 올려 

약속을 지켜보자.



올린 동영상은 '너의 의미'라는 노래로 아이유와 김창완이 리메이크 하여 부른 것을 내 나름대로 캡쳐하여 다듬어 올린 곡인 데 저작권상에 문제가 있었나 보네.  

뭔가 새로운 느낌이 들어 올렸는 데 한번 들어보고 싶으신 분은 네이버 뮤직 사이트 (http://music.naver.com/video/home.nhn?domain=DOMESTIC#)에 가서 13번째 곡 '너의 의미'를 클릭해 보시면 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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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발노인
2014. 9. 18. 10:56 그나머지

언젠가 이야기했듯이 매년 3월 6일, 그리고 9월 6일은 우리 고등학교 3학년 6반 반창회가 열리는 날이다. 올해엔 9월 6일이 추석연휴와 겹쳐 1주일 뒤로 미룬 9월 13일에 반창회를 갖기로 했다. 상반기 반창회는 서울, 하반기 반창회는 전주로 대략 정해져 있는 데 올해에는 하반기 반창회를 충주에 위치한 고도원이 운영하는 명상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갖는 게 좋을 것 같아 고도원에게 연락을 했더니 흔쾌히 우리 반우를 초청하겠다는 답신이 왔다.


그래서 카톡에 36반창회 대화방을 만들고 공지절차를 거쳐 참가를 권유했는 데 서울에서 9명, 전주, 계룡, 양지에서 각 1명 도합 12명이 참가하였다. 현지에서 직접 참가한 고도원 부부를 포함하면 모두 14명이 참가한 셈이다. 모두를 즐거운 기분에 오랜 친구를 만나 회포도 풀겸 해서 깊은 산속 옹달샘에 집결한 시각이 대략 토요일 오후 4시경, 주말반 명상지도를 마치고 나온 고도원 이사장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준다. 


고이사장의 말로는 본인이 2001년에 아침편지를 보내기 시작했고 세계적인 명상센터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충주시 노은면 60만평의 땅위에 벽돌 한장부터 시작해서 오늘 날 이만큼의 꿈을 이루었노라고...  그동안 너무 바쁘게 일했고 아직도 자기 꿈의 10%밖에 이루지 못했지만 이제는 친구들과 만날 틈은 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이번 반창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을 하였다. 이루어 놓은 꿈을 보니 입이 다물어 지지 않은 데다가 앞으로도 해야할 일이 더 많이 남았다 하니 분명 학창시절에 보던 고도원은 아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의 규모와 시설 규모만 해도 엄청난 데 고도원이 항상 강조하던 '꿈 너머 꿈'의 주인공이 바로 고도원이었던 것이다. 부러웠다.




깊은 산속 옹달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고도원센터 홈페이지 ( http://www.godowoncenter.com/ ) 를 참조하시고 

특히 도원이가 저녁식사후 녹색뇌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 데 그 땐 무슨 이야긴지 감이 잘 안오더니  녹색뇌에 대한 특강 ( http://www.godowoncenter.com/board/gocboard.goc?id=main_Story&no=15671 ) 을 시청해 보니 이해가 가는 걸로 보아 한번 쯤 시청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술잔을 주고 받는 것 아니다. 그곳에선 술, 담배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서 우리는 술한잔 못나눈 반창회를 치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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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2. 27. 13:08 그나머지

사람은 습관의 노예라 했던가?


하루 하낫씩 글을 올리겠다며 블로그를 운영할 때에는 의무적으로라도 이곳에 들렀는 데 기분 내키는대로 블로그에 들르기로 작정한 뒤로는 아예 블로그에 들어오지도 않게 되드만...


그랬더니 한때 일일  300여회에 이르던 조횟수가 이즈음엔 100회 안팎에 머물고 있고 그나마 대부분의 조횟수도 아마 스마트폰 검색하다 본의아니게 헛발질로 들른 조횟수일거라 추측해 본다. 사실 이전에 블로그를 잠시 닫았던 시절의 이유가 그대로 유효한 상황이며 나 자신의 일상적인 삶도 평범한 편이어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말일 게다. 


각설하고 최근에 나의 근황을 요약해 보면 3월 말 퇴직을 앞두고 변변한 재주 하나 없는 나로서는 마눌님과 일일 만보걷기 운동을 틈틈히 하고 있으며 주로 건지산 공원 일대나 전주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순례길'을 답사하고 있다. 퇴직후 귀농하려던 나의 꿈은 마눌님의 비협조와 나의 무능력으로 아무래도 재취업쪽으로 방향을 선회해야할 듯 하다. 




지난 주엔 오랜 학업 끝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효은이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울산에 다녀왔는 데 그곳에서 참으로 오랫만에 만난 Johns Hopkins 학우들과의 만남이 정말 즐거웠다. 모처럼만에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미국에서 생활하던 이야기를 하니 만감이 교차하였다.


효은이는 박사학위도 마쳤고 새로운 직장을 잡아 지난 주말 이사를 하였고 회사에서도 대우가 극진하다 하니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느낌이 드는 데 정작 가방끈만 길어졌지 시집을 못가고 있어 애비된 나로서는 '휴우~~!!'  하고 한숨만 나온다.




이번 주말엔 외손자 시훈이의 돐잔치가 서울에서 있을 예정이다. 어머님을 모시고 서울에 올라가 온 가족들이 모이기로 했는 데 이래저래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의 일상이 편하게 늙어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어서 내심 기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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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발노인
2014. 1. 5. 23:48 그나머지

조선 선조때의 학자 토정 이지함(1517~1587)이 도탄에 빠진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저술한 토정비결은 조선후기 이래 수백년간 민초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아온 것으로 가히 운세분야의 베스트 셀러이자 스테디셀러라 할 수 있다. 


토정비결은 1년 운세에 대한 예측을 해 주는 것으로 그 내용이 조금 흉하다 할지라도   ' ~~을 조심하면...', 또는 '이러이러한 대비를 하면...' 하는 식으로 표현되어 있어 항상 마음의 준비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런 토정비결의 내용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매년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을 한번 살펴보고 금년 한해 어떤 마음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가늠해보는 재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작년에는 여러가지로 조금 답답한 한해였기에 토정 이지함님의 유지에 따라 도탄에 빠진 백성중의 한명인 나의 올해 운세는 어떤가 싶어 한번 살펴 봤는 데 그 내용이 상당히 좋아 자랑삼아 올려본다.


북쪽으로 가면 불리하다 하니 서울에 자주 올라 다니지 말아야 하나?   이거 음력으로 봐야 되는 건지 그래서 구정 지나고 부터 유효한 건가?  뭐 여러가지 의문이 떠 오르지만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닐 것이므로 대충 올 한해는 기분좋고 재수좋은 일이 많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즐겁게 지내기로 하자. ㅋ   



 토정비결로 본 2014년 당신의 총운

왕조우연 금린일지라, 못에서 고기를 낚으니 금비늘이 날로 이르도다.  금년의 운세는 고목이 봄을 만난 것처럼 마침내 뜻을 이루게 되고 모처럼의 운이 닿아 생남할 것이니 경사로 인해 기쁘리라. 또한 뜻밖의 재물로 인하여 생활이 평안해지고 운수가 길한 가운데 원하던 재물이 들어오니 웃음이 떠나지 않으면 평안한 나날 속에 오직 기쁨만을 즐기게 되리라. 남쪽에는 길함이 있느니 그곳으로 가면 성공하겠고 북쪽은 불리하므로 그곳엔 출행치 않는 게 좋으리라. 또한 설사 재운이 동하여 많은 재물을 얻는다 하여도 몸가짐을 겸손히 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붙잡는 도다.  사람들로부터 우러름을 받으며 한편으로는 재록이 풍만하니 부러울 것이 없는 해로다. 길한 운세를 놓치지 않으려면 년초에 신에게 공을 드리면 더욱 대길하리라.

 

 1월의 운세

동원의 홍도가 때를 만나 꽃이 되니 신수가 길하겠다. 만일 새로 혼인하지 않으면 생남할 수다. 하늘이 기이한 복을 내려 주므로 하는 일마다 기대밖에 성과를 올리게 되고 백사에 기쁨이 철철 넘치리라.

 

 2월의 운세

작은 것을 쌓아 큰 것을 이루게 되니 백 가지의 일 모두를 순하게 성사시키는 달이로다. 재앙은 사라지고 곳곳에서 복이 들어오니 재물은 나를 떠나지 않고 내 것으로 화하도다. 특히 금성이 내게 이득을 주니 함께 서로 동사하라.

 

 3월의 운세

신령이 나를 도우므로 꾀하던 일을 이루게 되고 소망을 모두 이루어 의기 양양해 지리라. 우연히 재물을 얻게 되므로 부귀영화가 시작되고 가히 부유함과 명예를 얻게 된다. 목성을 만나면 유익한 일이 생긴다. 부모께 효도함에 소홀하지 말라.

 

 4월의 운세

비록 재물이 왕성하여 부귀를 누린다 하여도 자손에게 액이 들어 근심이 생기니 남 모르는 고통에 부귀영화를 즐길 여유마저 잃는 수로다. 액운을 면하려면 명산에 들어가 기도하고 간구하면 이 어려움을 능히 물리칠 수 있으리라.

 

 5월의 운세

뜻밖의 공명한 일을 행하게 되니 만인이 나를 어질다 말하며 칭찬한다. 이 달에는 안정하고 거해야 길하겠고 경망 되이 움직이면 불리할 운수! 편안한 마음으로 때를 기다리며 한 곳에서 머물러야 한다. 이미 그 뿌리가 땅을 거머쥐었다.

 

 6월의 운세

정가와 김가 두 성이 우연히 나에게 와서 나를 도우니 꾀하던 일을 모두 성사시키고 손에 권세를 쥐게 되므로 이름이 사방으로 떨어질 운수. 도처에 영화가 있으니 의기가 넘치고 의욕적인 달. 봄아지랑이가 초목에 새순을 눈뜨게 한다.

 

 7월의 운세

재성이 몸에 임하니 반드시 재물이 들어올 운.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사람이 나의 일에 동참하여 도움을 주게 되니 오랫동안 염원하던 일을 이루게 되도다. 이 달에는 수입이 커지며 가정에도 반드시 경사가 있을 좋은 괘.

 

 8월의 운세

마음을 어질게 하여 도리를 지키니 그것이 복으로 화하고 사심 없이 타인을 대하게 되므로 매사에 공을 쌓는 달. 공명하고 정의로운 언행으로 인해 복락이 내리니 마치 태산 같은 재물을 얻고 기뻐하리라. 밝은 곳으로 행하라.

 

 9월의 운세

운세가 흥왕 하므로 가도 가도 좋은 일이 생길 뿐 막히는 일이 없도다. 재록이 풍만하고 꾀하고 원하는 것보다 이루어지며 가정이 화평한 가운데 귀한 자 손을 보게 되니 이 얼마나 복되고도 길한 운세인가.

 

 10월의 운세

만일 허욕에 남을 속이고 이익을 얻으려면 도리어 크게 다칠 운세. 마음가짐을 깨끗이 하라. 신상에 근심이 생길 운이고 이 달에는 남과 시비할 수 있으니 다소 불리한 운세. 목성을 가까이 말라. 남으로 인해 하는 일이 공허할 수있다.


 11월의 운세

처음은 얻었으나 뒤돌아 헤어 보면 도리어 잃은 것을 느끼리라. 이 달에는 이성을 조심해야 하겠다. 이성으로 인해 화를 입게 되고 손재를 면하기 어렵겠다. 지금은 어려워도 뒤에는 길운이 다가오고 있으니 좌절하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하리라.

 

 12월의 운세

가운이 대길하므로 가정의 평화가 있고 마음은 안정을 되찾겠다. 길한 운세가 찾아왔으므로 비로소 잃었던 웃음을 되찾고 나의 복락을 즐기며 풍류에 적어 나날을 보내는 도다. 기쁜 일이 중중한 가운데 건강한 심신의 나날을 보내리라





인터넷에서  토정비결 살펴보기

http://www.yuksul.com/tojung.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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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발노인
2013. 12. 29. 18:13 그나머지


못잊을 당신 - 이미자



                        음악을 끄려면 요기를 클릭 ↗





가수 이미자.


결코 화려하지 않은 외모지만 노래만큼은 최고였다.

타고난 미성에 꾸밈없는 그녀의 애절한 창법은 듣는 이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로 추앙 받는 이미자에게는 엘레지의 여왕,

살아있는 트로트의 역사, 국민가수라는 찬사가 늘 따라다닌다.

 

대표 곡은 역시 ‘동백아가씨’.

최초로 100만장 음반판매시대를 연  영광스런 노래이건만 한동안

왜색(일본풍)가요로 금지의 낙인이  찍혀 깊은 좌절을 안겨준 곡이기도 하다.

 

하지만 40여 년 동안 500여장의 음반과 2,000 곡이 넘는 노래를 발표해 한국 최다음반, 최다 취입곡 가수로 기네스북에도 오른 이미자는 우리 가요사상 최고의 여가수중 한 명이다.

 

이미자는 서울 한남동에서 1941년 7월 22일 을지로 화원시장에서 일했던 부친 이점성씨와 모친 유상례씨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불화로 4살 때 생모와 이별하고 할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60년대 당시 신문, 잡지에는 ‘6살 때부터 이미자는 서커스단에서 끼니를 굶어가며 노래를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99년 자신의 자전 에세이 ‘인생 나의 40년’에서 그녀는 그 기록이 사실 무근이라고 주장했다.  한남초등학교를 다니다 10살이 되던 해 한국전쟁이 터졌다. 그녀의 집안은 1.4후퇴 때 충남 예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겨울을 났다. 이곳에서 생전 처음 콩쿠르에 나가 특별상을 받았을 뿐이다. 이후 부산 피난 시절 그녀는 국제시장 앞 동아극장에서 인기가수 백난아의 공연을 보면서 가수의 꿈을 품었다.

 

국제시장의 노래 잘하는 아이 이미자는 주위의 소개로 미군부대 위문공연 무대에 올라 몇 개월 간 영어가사로 번안한 ‘아리랑’을 부르기도 했다. 휴전 후 서울 계동으로 올라온 뒤 부친이 재혼을 해 다섯 명의 이복동생이 생겼다. 이미 6학년 나이가 된 그녀는 종로 YMCA자리에 선교단체가 천막을 치고 운영하던 학교와 청계천의 일성고등공민학교 중학교 과정을 거쳐 마포 문성여중고를 다녔다. 여고 시절 국전에 정물화를 출품하고 규율부 단장을 맡아 시가행진을 벌이는 등 활달한 학생이었다.

 

당시 송민도, 나애심의 노래와 슬픈 영화들을 특히 좋아했던 그녀는 “학교 생활은 재미 있었지만 졸업해 가수가 되는 것만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각종 노래 대회에 몰래 참가해 상품으로 큰 그릇, 대야, 양푼들을 받아왔다.

 

2학년 말에 나간 KBS 라디오 노래자랑대회.  남산에 있던 KBS에 교복을 입고 갔다가 학생출전 불가라는 이유로 퇴짜를 맡자 다음날 새엄마 옷으로 갈아입고 출전을 하는 대담성을 보였다. 이때도 1등을 했다. 여고 졸업을 앞둔 58년 KBS보다 5년 먼저 개국한 최초의 민영TV 방송 HLKZ의 ‘예능 로터리’에도 출전해 최고상을 받았다. 입상을 계기로 화신백화점 카바레의 전속가수로 픽업됐고 이때 섹소폰 연주자 김경호로부터 악보를 보는 음악이론을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가수 남일해가 찾아와 KBS악단장인 작곡가 나화랑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나화랑은 그녀에게 라디오 쇼프로 ‘노래의 꽃다발’출연을 주선하고 59년 데뷔 곡인 ‘열아홉 순정’을 SP음반과 LP음반을 내 정식가수의 길을 걷도록 했다. 하지만 출연료가 싼 오프닝 가수로 서울보다는 지방 무대를 더 많이 돌아다녔다. 그때는 고생의 연속이었다.  선배들 양말을 빨고 온갖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한번은 지방공연을 갔을 때 여관방이 너무 추워 몰래 도망을 친 적도 있었다. 춥고 외로웠던 이 시기에 그녀는 콘트라베이스 주자인 정진흡씨를 만나 결혼했다. 당시 스카라 극장 건너편 국제다방이나 신카나리아가 운영하던 모나미다방은 무명가수들의 집합소. 이미자도 이곳에서 일거리를 찾으며 몇몇 레코드회사를 기웃거리는 싸구려 가수였다.

 

그녀의 애절한 노래를 귀담아 두었던 작곡가 백영호의 추천으로 이미자는 전속계약을 맺고 ‘동백아가씨’를 취입할 기회를 가졌다. 인기가수 최숙자 대신 그녀와 전속계약을 맺은 이유는 값싼 개런티 때문. 미도파레코드에서 독립해 모나미다방 뒤에 문을 연 지구레코드는 보따리 장수 수준의 신생 회사였다.

 

64년 여름, 선풍기 한 대가 전부인 지구 레코드 녹음실. 임신 8개월 만삭의 무거운 몸으로 이미자는 찜통 더위와 싸워가며 녹음을 마쳤다. 당시는 최희준, 한명숙, 현미등 미8군 가수들의 전성시대. 7월에 ‘동백아가씨’ OST음반을 발매한 지구레코드는 인기 배우 최무룡의 ‘단둘이 가봤으면’을 타이틀곡으로 정했다. 

 

하지만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동백아가씨’가 온 나라를 울음바다로 몰아넣으며 흥행에 성공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타이틀 곡 은 뒷전이고 뒷면에 수록된 이미자의 노래 ‘동백아가씨’만 연신 방송에서 흘러나왔다. 음반을 사려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전국의 음반업자들이 음반을 구하기 위해 아우성을 치자 언론들은 ‘가요계 판도를 뒤바꾸는 일대 사건’이라고 흥분했다. 

 

그렇게 무려 100만장의 음반이 팔려나간 ‘동백아가씨’는 35주 동안 인기차트 1위를 점령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무명가수 이미자는 일약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극장주들은 2,000원이던 극장 출연료의 20배가 넘는 5만원에라도 이미자를 모셔가기 위해 사활을 건 출혈 경쟁을 벌였다. 연주비 조차 없어 박시춘의 도움으로 겨우 녹음했던 신생레코드사 지구도 메이저급 회사로 동반 상승했다.

 

'동백 아가씨'에는 취입 때부터 갖가지 사연이 만발했다. 미도파레코드에서 독립한 지구의 임정수 사장은 생소한 지구보다는 중견회사인 미도파레코드 이름으로 음반을 슬쩍 발매했다. 그런데 음반이 공전의 히트를 터뜨리자 미도파 측에서 회사 이름 도용 문제를 거론하며 소송을 걸어와 곤혹을 치렀다. 미도파와 지구 두 회사의 같은 '동백아가씨'음반이 존재하는 것은 이 같이 복잡한 사연 때문.

 

 

1964년 겨울, 대학생들이 주고객 층인 충무로 음악감상실, '세시봉'과 서린 동경 음악실. 트롯을 천시했던 곳의 젊은 멋쟁이들조차 '동백아가씨'를 합창으로  따라 부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후 이미자는 '울어라 열풍아'등 후속 발표 곡마다 인기 퍼레이드를 벌었다. 인기 가수로 떠오르자 성남극장, 우미관, 노벨극장, 금호극장등 하루에 극장 네 곳을 매일 한바퀴 도는 바쁜 몸이 되었다. 64년 9월 첫 딸 재은을 낳은 이미자는 1년 사이에 아담한 집과 전화, TV, 자동차를 한꺼번에 마련할 만큼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그녀는 "사는 즐거움과 일하는 보람을 느꼈던 꿈같은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65년 말 '동백아가씨'가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방송금지가 되고 66년 '섬마을 선생님'도 뒤를 이어 판매 금지 당했다. 남편과의 갈등으로 이혼까지 하는 시련의 계절이 찾아 왔다. 아이러니한 것은 금지 처분을 받은 '동백아가씨'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애창곡이었다는 사실. 대중 음악에 대한 군사 정권의 이중 잣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금지곡 가수이면서 정상의 가수였던 그녀는 월남 파병 부대 위문 공연단에 1순위로 뽑혀 다섯 차례나 파월 장병들의 눈물샘을 터뜨렸다. 이때의 공로로 73년 방한한 티우 대통령으로부터 베트남 최고훈장을 받기도 했다. 66년 이미자의 소문을 들은 일본 빅터레코드사는 음반 취입을 제의를 해왔다.  현해탄을 건너 가, '동백아가씨'와 현지에서 받은 곡을 일본 노래로 취입했다. '동백아가씨'는 '사랑의 빨강 등불'로 일본 정서에 맞도록 제목과 가사 내용이 변경되고 이미자는 일본식 발음인 '리요시코'로 소개되었다.

 

당시는 한일 국교 수립이후 반일 감정이 악화된 시절. 이 사건은 반일 감정에 거센 기름을 붓는 파문을 일으켰다. '이미자를 즉시 송환시켜라',  '왜색 노래가 이제야 제 나라 찾아 갔다'는 극단적 반응이 불거져 나왔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고통을 받았다. 대중 음악은 한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과 문화적 정서와 밀접하게 연관돼 사회를 반영함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어쩌면 이미자는 대중음악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시대의 희생양일지도 모른다.

 

촉망받는 작곡가 박춘석이 자청해 전속사를 옮겨 오면서 더욱 가속이 붙은 이미자는 66년도엔 '흑산도 아가씨'등으로 가요계를 석권하고 67년에는 최고의 히트곡 '섬마을 선생님' 등 무려 4곡이 연말 결산 톱 10곡에 선정되는 절정기를 구가했다. 68년에는 제일교포 위문차 두 번째로 일본 공연 길에 올라 후지 TV에 출연했다. 상복도 유난히 많았다. 64년부터 70년까지 MBC 10대 가수상의 단골 수상자였고 그 중 3번은 가수왕에 등극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녀가 받지 못한 가요계의 상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69년은 끔찍했던 한 해. 빅 히트곡 '기러기 아빠'가 또다시 방송금지 되었을 뿐 아니라 6월에는 북악 스카이웨이 팔각정 앞길에서 대형 교통 사고로 팔이 부러지고 얼굴이 찢어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연말에 취입곡이 1,000곡을 넘어선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혼 이후 크고 작은 스캔들에 연루되었던 이미자는 KBS PD 김창수씨와 재혼을 하며 안정을 찾았다.

 

87년 8월 '동백아가씨', '유달산아 말해다오' 등 5곡이 한꺼번에 금지의 멍에에서 벗어났다. 생기를 되찾은 이미자는 89년 10월 순수 예술계의 반발을 딛고 최초로 세종문화회관무대에서 30주년 기념공연을 여는 쾌거를 이뤄냈다. 91년엔 SBS 라디오 '이미자의 가요 앨범'을 맡아 DJ로 변신을 하기도 했다.

 

95년엔 제2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문화훈장을 받고 97년에는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 히트곡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까지 세워졌다. 99년엔 노래인생 40년을 총 정리하는 기념 앨범과 자전 에세이를 발표했다. 2002년에는 국내 가수로는 처음으로 '평양 특별공연'을 남북 동시 생중계로 방영해 민족 모두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이처럼 그녀의 노래들은 역경의 삶에서 나오는 애절함과 꾸미지 않는 순수함으로 남북을 불문하고 한민족의 가슴을 울려왔다. 흔히 이미자는 끊고 맺음이 분명하고 감정 표현이 직설적인 성격, 사생활 공개를 꺼려 인터뷰하기 힘든 가수로 유명하다.  하지만 가요계의 대모로 44여 년 동안 국민 가수로 칭송 받는 이유는 '당일 날 곡을 받아 가사를 외우고 취입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가수'라는 작곡가 고봉산의 극찬처럼 실력 있는 가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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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곡
열아홉 순정1959년
동백 아가씨1964년
황포돛대1964년
흑산도 아가씨1965년
울어라 열풍아1965년
섬마을 선생님1966년
지평선은 말이 없다1966년
황포 돛대1966년
빙점1967년
그리움은 가슴마다1967년
엘레지의 여왕1967년
서울이여 안녕1968년
여자의 일생1968년
황혼의 부르스1968년
아네모네1968년
기러기 아빠1969년
아씨1970년
못 잊을 당신1971년
여로1972년
삼백리 한려수도1973년
낭주골 처녀1973년
정든 섬1974년
안 오실까봐1975년
모정1978년
노래는 나의 인생1989년

<위키피디아> : http://ko.wikipedia.org/wiki/%EC%9D%B4%EB%AF%B8%EC%9E%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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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못다한 사랑

                              솔개트리오


오늘도 갈대밭에

저 홀로 우는 새~는
내 마음을 알았나봐
쓸쓸한 바~람에
아득히 밀려오는
또렷한 그~ 소리는
잃어버린 그 옛날의
행복이 젖어있네
외로움에 지쳐버린
내 마음을
어떻게 말~로~ 다 하나요
난 몰라요
이 가슴엔
아직도 못다한 사랑

지난밤 꿈 속에서
저 홀로 우는 여~인
내 마음을 알았나봐
쓸쓸한 바~람에
아득히 밀려오는
또렷한 그~ 소리는
잃어버린 그 옛날의
행복이 젖어있네
외로움에 지쳐버린
내 마음을
어떻게 말~로~ 다하나요
난 싫어요
돌아와요
아직도 못다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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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31. 09:28 그나머지

디지털제품의 발전으로 인간의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머리를 쓰지 않는 탓에 치매끼를 보이는 것을 '디지털 치매'라고 하나.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통에 자기 가족들 전화번호 하나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대는 데 

이건 바로 나같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 아닌가?


영국에서는 택시운전사 자격시험과목중 내비게이션에 의존하지 않고

런던 골목 구석구석을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을 치루게 하는 데 

연구 결과 기사들의 해마 상태가 훨씬 양호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한 어떤 사람이 객지에 나갔다가 휴대용 전화기를 잃어버렸는 데

현지에서 일정은 물론이고 연락할 가족이나 친구 전화번호 하나 생각나는 게 없어서

아주 난감했다는 이야기도 비일비재하다.


그러고 보면 최소한 마눌님 전화번호라든가 

가족들 몇명의 전화번호는 필수적으로 암기해 두어야 하고 

이전 포스팅에 올려 놓았던 '건배사' 같은 앱을 사용하기 보다는

단 하나 건배사라도 제대로 암기하여 활용하려 노력해야 할 듯...


어제 저녁에도 준비해 놓았던 건배사 '일십백천만'을 써 먹으려 했는 데

갑자기 옆친구가 '일; 하루에 한번 하고 (하긴 뭘해?)......' 해 버리니

애써 암기해 두었던 건배사가 헷갈리는 증상이 나타나는 걸 보면

정작 중요한 건강수칙은 불편하더래도 스마트폰을 멀리하는 일인 것 같다.


근데 스마트폰 앱중에 '헬스도우미'라는 이름으로 만보계 앱이 바탕에 깔리고 

칼로리 계산, 체중계산.. 등 종합적인 건강관리에 도움이 되는 앱이 있던 데

왜 일반 어플 리스트에서는 찾을 수 없지? 

(ㅋ... 이 못말리는 스마트폰 의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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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29. 23:18 그나머지

오늘은 연말연시도 아닌 데 뜬금없이 건배사에 대해 몇마디...


사실은 오늘 저녁 고교동창 모임이 있어 참석했더니 건배사를 하는 데 

그 중 한 친구가 '일십백천만'이라는 구호를 선창하며 따라 하래네.


그 의미는 일 하루 한 번 이상 좋은 일 하고, 십 하루 열 번 이상 크게 웃고,

백 하루 백자 이상 쓰고, 천 하루 천자 이상 읽고, 만 하루 만 보 이상 걸으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의미라 한다.


일상생활에서 건강을 챙겨야할 우리나이에 알맞은 건배사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건강관련 건배사를 그럴듯하게 설명하며 선창하고는 

모두들 술잔의 술을 마셔버리는 행위는 뭔가 모순된 행동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술좌석에서 재미있는 건배사는 술맛을 돋구는 좋은 안주가 되는 데

때마침 내일은 서울에 올라가 저녁 약속이 2건이나 겹쳐있는 관계로

어느 곳에서 건배사를 할지는 모르겠으나 오늘 배운 건배사를 한번 써 먹어야 겠다.


전에는 '이게 술이여?' '아니여' '그럼 머여' '정이여'.. 뭐 이런 건배사라든가

또는 '세우자'!! (계 평화와 리의 우정과 신의 건강을 위하여..) 이러면

(남성들) 빳빳하게.. (여성들) 오래오래~~  이런 식의 후렴을 붙인다든가


마피아, 사우나, 오징어, 오바마, 사이다, 개나리, 당나귀, 해당화,....등

수 없이 많은 건배사를 사용했는 데 요즈음엔  막상 현장에선 사용하려면 

기억이 잘 나지 않아 곤혹스러울 때가 있드만.


그래서인지 모 회사에서는 아예 '건배사 모음집'이라는 소책자를 만들어

고객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지.


이즈음에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던지

아예 '건배사 앱'이라는 어플을 깔면 아주 쉽게 찾아낼 수 있어

세상 차암 좋아진 것 같으면서도 뭔가 빡쎈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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