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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1일부터 쓰기 시작한 감사일기가 오늘자로 3개월이 지났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믿음으로 쓰기 시작한 감사일기. 일기라고 명칭을 붙이다 보니 비공개로 써왔는 데 이런 블로그에서 비공개로 개인일기를 계속해서 올리다 보니 흥미도 반감되고 지루해 진 것 같아서 그동안 써왔던 모든 일기는 다른 곳으로 옮기고 오늘부터는 공개로 쓰는 글을 올리기로 한다.


오늘은 아침에 주일미사에 다녀와서 분당에 잠시 가계셨던 어머님을 모시러 갔었다. 그동안 이모집에서 어머님이 함께 지내셨는 데 감사의 마음으로 이모님께 점심을 대접한 뒤고 어머님을 모시고 집에 돌아온 시각이 대략 오후 3시경. 바깥 날씨가 너무 좋은 것 같아서 겨울내내 쳐박아 두었던 전기자전거를 손질하여 타고서 올림픽공원 쪽으로 한바퀴 돌고 왔다. 올림픽 공원에서 본 재미있는 장면중의 하나는 모형트럭을 운전하고 가는 한떼의 사람들 모임을 만났는 데 동호인 이름을 물어보니 RC-Truck 모임이라 한다. 모형트럭 한대값은 대략 2~3백만원을 한대나.


요즈음 문재인 대통령이 참으로 놀랄만한 실력으로 우리나라를 둘러싼 안보문제를 잘 풀고 계시기 때문에 카톡에 글을 잘 올리지 않고 있다. 내가 나서서 설치기 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신문기사나 인터넷을 통하여 뉴스를 잘 알고 있을 것이므로 행동을 삼가기로 한 것이다. 그래도 참지 못하고 2018. 3. 11 (일) 카톡에 올린 글 하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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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잡는 기사 2편


트럼프는 이번 올림픽 성공이 자기 덕분이라고 문대통령이 말했다고 자랑하며 다니고 일본 TV에서는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신속히 추진된 것은 일본의 각본에 따른 결과라고 주장함. 일본이 후쿠시마 방사능 누출의 영향으로 돌아버린 것 같다는 것이  네티즌들의 중론임...ㅋㅋㅋ...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421&aid=0003250286



http://www.fnn-news.com/news/headlines/articles/CONN00386867.html


9 일 전격적으로 발표 된 미 정상 회담. 트럼프 대통령이 결단에 이르는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정치부 관저 담당 · 센다 기자는 "이번 북미 회담으로하는 흐름은 사실 일본 정부의 시나리오 대로이기도 하다. 일본이 주도하고 미국과 한국을 움직여 압력을 강화 해 왔다.



요건 트럼프가 올린 트윗인 데 아베 녀석이 트럼프에게 북한 믿지 말라고 얼마나 귀찮게 씨부려 댔으면 very enthusiastic 이라는 표현을 썼을꼬? 내용을 의역하자면 ‘아무리 북한하고 대화하지 말라고 지랄해도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느그들은 1,000억 달러씩 벌어가는 짓이나 그만둬 임마.’ 



posted by 백발노인

바깥 날씨는 춥지, 적폐청산 진도는 터덕거리지 참으로 답답한 이즈음이다. 손자 시훈이를 어린이 집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것으로 오늘 하루를 보냈다. 정형식판사의 이재용 집행유예에 대한 판결로 하루 종일 마음 한구석이 뚫려버린 듯 허전한 날.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정의가 실현될 날은 언제 쯤 올 것인가?




그래서 오늘 오유에 올렸던 글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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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촛불집회는 아직 공식적 발표가 없으니


우선 사이버 촛불을 하나씩 듭시다.

어제 시작된 청원이 오늘 벌써 7만명을 넘었음.

100만 촛불을 향해 가즈아 ㅏㅏ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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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감을 가질 친구 녀석들도 있겠지만 4548카톡방에도 글 하나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올린 카톡 글.




다행이라면 이시각 현재 정형석에 대한 청원인 숫자가 14만명에 이르렀다는 것 정도라고 할까. 아까 오유에 글 올릴 때만 해도 7만명 정도였는 데 지금 이 시각 14만명에 이를 정도이니 아마도 청와대 청원제도가 생긴 역사상 가장 빠르게 청원인이 늘어나고 있는 사안이라 생각된다. 


3권분립이니 뭐니 해서 청와대에 이런 청원을 해 보았자 뾰족한 대책도 없는 것이 현실일 게다. 그러나 민초들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낼 방법이 없으니 어찌하랴. 당사자인 정형석이 귀가 있고 눈이 있으면 자기가 저질러 놓은 일이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는 것을 실감은 하겠지.




posted by 백발노인

1월 10일부터 1월 16일까지 1주일간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언젠가 이야기 했듯이 해마다 1월 15일 결혼기념일 즈음하여 해외여행(?) 다녀오기의 일환이다. 이번에는 1월 10일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전국적으로 불어 닥친 강추위와 눈보라로 처음 이틀 동안은 호텔에 갇혀 꼼짝 못하고 지내다가 나머지 5일 동안 아주 좋은 날씨에 즐겁게 지내다가 왔다. 제주도 방문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제주도는 쾌적한 도로, 멋진 자연 경치, 곳곳에 위치해 있는 관광 시설, 특히 중산간 지역의 이국적인 풍광 등 기분전환을 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쿠팡을 통하여 숙소와 차량을 렌트하였다. 6일간 제주 펄리호텔 2박, 서귀포 중문관광호텔 2박, 성산 휴리조트 2박 등 모든 숙소가 아주 정갈하고 쾌적했다. 전기차는 난생 처음 경험한 것으로 날씨가 추운 탓인지 1회 충전시 주행거리가 100Km 정도로 짧아 다소간 우려스러운 점도 있었으나 차량에 익숙해지고 충전소 위치 파악 및 충전요령 등을 습득하고 나니 그처럼 편리한 차도 없는 것 같았다. 승차감과 주행감이 전기차가 일반 차량보다 좋은 것 같았으며 특히 SM3는 렌트료가 저렴하고 또한 차량 충전카드를 렌트카 회사에서 제공하여 주기 때문에 기름값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제주에 머무르는 동안 들른 곳은 서귀포 올레시장, 중문관광단지, 아든리조트, 모슬포 어항, 송악산 올레코스, 제주도 영어마을, 성과 건강 박물관, 시에스호텔, 한일우호연수원, 위미리 동백마을, 남원 해안도로, 표선비치, 섭지코지, 올레길 1번 해안도로, 비자림, 비자림로, 산굼부리, 제주 렛츠런공원, 제주 4.3평화공원 등으로 그런 곳을 찾아다니는 드라이빙 하는 시간이 좋았다.

 

마지막 날 방문한 제주 4.3평화공원을 후배들이 있는 카톡방에 소개했더니 아래와 같은 대화가 오갔다.

 

--------------- 2018년 1월 16일 화요일 ---------------

 

[심형수] [오후 9:30] 내가 제주도에 갈 때마다 들르는 4.3평화공원은 해방후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아주 잘 묘사해 놓은 평화전시관이 있는 곳이다. 복잡했던 해방 당시의 정국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도록 공을 들여 만들어 놓은 역사교육관이 있고 공원부지만 해도 10만평이 넘는 아주 좋은 휴식공간인 데 제주도 올레길은 알아도 이곳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가서 보면 항상 썰렁했었는 데 이번엔 예전과 달리 사람들이 많았으며 주차공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곳 직원에게 물어보니 올해가 4.3사태 발생 70주년이 되는 해로서 대대적 행사가 기획되어 있어 홍보를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예산배정도 많이 받고 직원들도 신바람나서 일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예전엔 상영관이 있는 줄 몰랐는 데 시간별로 동영상도 상영하고 있었고 홈페이지에 들러보니 내용도 상당히 충실해진 느낌이다. 아직 가보지 않으신 분은 혹시 제주도에 가시면 꼭 한번 들러보시길 강권한다. ^ ^

 

http://jejupark43.1941.co.kr/

 

[***] [오후 9:38] 제주 공산군 팔치산 놈들을 평화란 이름으로 무슨 민주운동인 것처럼 재조명 추모하다니 기가 막힙니다. 일부 억울한 죽음과 희생이야 있겠지만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조만간 여수, 순천 반란사건도 뒤따를 것이 뻔하네요.

 

[심형수] [오후 9:41] ㅎㅎ

***가 분연히 떨쳐 일어나셨군..^^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역사를 조금만 더 깊게 파고 살펴보면 아주 기가 막힌 이야기가 있다오. 만나서 얘기해 보자구...

 

[***] [오후 9:57] (이모티콘)제발 정신 좀 차리슈. 분단국에서 살면서 온갖 전쟁도, 테러도 겪었으면서 골수 공산당이 아니라면 도대체 머리가 이상하거나 도저히 이해불가.

 

제 선친께서는 제주 공비토벌에 참전 하셨다가 갖은 고생 다 하셨고 6.25때는 연세 많다고 징병 대신 징용으로 또 터키군에 배속되어 함경도까지 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후퇴하셨으며, 작은 아버지는 압록강까지 진격하셨다가 중공군 때문에 낙오하여 한겨울에 혼자서 한 달이상 걸려 간신히 탈출하였다고 합니다.

 

나도 대학 때 유신반대 데모는 열심히 했지만 인간본성에 반하는 공산주의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좌파를 넘어 종북친공이면 더 이상 할 이야기 없습니다.

 

[심형수] [오후 10:04] 북한 빨갱이들이 쳐들어오면 내가 노구를 이끌고 먼저 나가 싸울터이니 그건 걱정 마시라..

 

도대체 군대도 안간 녀석들, 안보를 부정부패와 엿바꿔 먹는 세력들이 만든 종북좌빨이라는 틀에서 언제쯤 벗어나시려나?

 

--------------- 2018년 1월 17일 수요일 ---------------

 

[심형수] [오전 10:26] ***를 생각하며 아침에 써 본 글

 

원수를 사랑하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생활은 미워하는 마음으로 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취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미워하는 대상을 정확히 규정해 보는 것이다.

 

나는 ***를 미워한다. 왜 미운가? 그가 가진 요소 중 내가 미워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대부분의 경우에는 내가 싫어하는 요소를 지녔기 때문일 것이며 그 싫어하는 요소가 과연 싫어할 만한 것인가? 라며 따져 보는 것이 성숙한 인간이 가져야 될 자세라 생각한다.

 

나는 ***가 싫다. 그 녀석이 거짓말을 잘 하기 때문에.... 그런데 그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피치 못할 사정이라든가 본인의 약점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라면? 막무가내로 미워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가장 나쁜 경우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거짓말을 하고 그 피해를 상대방에게 고스란히 덮어 씌우는 거짓말일 것이다. 거짓말을 예로 들었지만 인간이라면 가져서는 안 될 사악한 요소들 때문에 누구를 미워한다면 당연히 미워해야 하며 철저히 미워해야 한다.

 

그러나 미워하는 요소가 피상적이거나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면?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본인의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좋은 일이다. 그냥..., 못 생겨서, 목소리가 싫어서, 뭐 이런 식은 초딩 수준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하물며 미워하는 요소가 나보다 잘나서, 똑똑해서, 인기가 많은 것 같아서.., 등이 라면 어찌할 것인가? 인간인지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야 말로 비루한 최하급 인간이 할 짓이다.

 

미워하는 대상으로 인간의 예를 들었지만 집단이나 국가로 확대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이 경우에 하나의 집단 속에 다양한 개인이 섞여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이것들을 분별해 볼 수 있는 지혜나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그것이 어디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그저 개인의 역량에 맡길 수 밖에 없겠으나 일률적으로 맹신적 부류에 속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 것이 성숙된 사람의 자세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분단된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헷갈려 하고 있는 부분을 얘기해 보자. 북한이다. 빨갱이 공산주의 놈들이다. 나이 어린 김정은이 손을 한번 흔들면 눈믈을 흘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는 정신병자들의 집단 수용소 같은 국가 북한. 당연히 미워한다. 아니 지구상에서 씨를 말려 버려야 할 악종들이다. 그러나 조금만 깊게 생각해 보면 세습독재국가를 만들기 위해 온갖 거짓말로 주민들을 속이는 상층 지배집단들과 그들에게 빌붙어 비루한 목숨을 연장해 가며 살아가는 부류들을 척결해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차라리 못 먹고 못 살고 정신마저 돌아버린 대다수 주민들은 우리가 돌봐주어야 될 환자들이 아닌가?

 

사실 남한에도 그러한 부류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자신들의 이익과 영달만을 위해서 독재체제를 획책하고 국민들을 이간질시켜 분열하게 만들고 거짓말로 상대방을 종북좌빨이라 딱지 붙이고 자신들은 부정부패로 얼룩져 있으면서 제대로 깨어있는 시민들을 거짓말로 현혹시키고 속이려는 세력. 그리고 그들에게 빌붙어서, 아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어쩔 수 없이 협조해 가며 적당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속물들이 (나 역시 이들 속물들과 한 부류라는 것을 인정한다.) 누구인지 말 안 해도 사실 모든 사람들은 알고 있다. 다만 진영논리에 갇혀 있거나 아니면 그눔의 지역감정이 뭔지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헛소리를 해대고 있을 따름이지.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경우 대부분 상대방과 이익을 나누어 가져야 하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이익을 보게 되면 내가 손해를 보기 때문에 서로 미워하고 헐뜯는 관계가 된다. 이런 경우엔 우리는 어느 편에 서 있기 때문에 상대방을 미워할 게 아니라 먼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결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당연히 대의명분을 쥐고 있는 편에 서야 하겠지. 서로 대의명분을 주장한다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누가 사실에 입각한 대의명분을 주장하고 있는 지 파악하면 된다.

 

정치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라 면서 애써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두뇌가 작동하지 않는 불구자임을 감추려 초연한 척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우리가 미워하며 타파해야 할 부류는 바로 자신들의 부귀를 위해서 거짓말로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는 부류들이라 생각한다. 역사의 발전에 기여를 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항상 진실에 귀를 기울이고 사실을 밝혀내려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osted by 백발노인

사실 어제 일기도 그랬지만 오늘 일기도 12월 26일 아침에 쓰고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몸살, 고열로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앞서 적어놓았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당일인 25일에도 성탄절 미사에도 참석치 못하고 집에서 푹 쉬면서 몸을 추스렸더니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이제(26일 아침)는 이빨만 아픈 상태이다. 


종일 자다 깨다를 반복한 탓인지 밤늦게 KBS 1에서 방영된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라는 다큐영화를 볼 때엔 그리 졸립지 않았다. 지난번 소록도에 가서도 두분의 이름과 함께 헌신적인 봉사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 데 막상 영상으로 편집된 두분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인간으로 환생한 천사라는 느낌이 들었다. 


종일 집에서 빈둥댄 탓으로 별로 적을 이야기도 없으니 두분 관련기사 한편을 긁어 오는 것으로 오늘의 일기를 채운다.


[인물 360˚] ‘소록도 할매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기사등록 : 2017.08.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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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천사’라 불리는 간호사 마가렛(왼쪽)와 마리안느(오른쪽)가 전남 고흥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법무부 제공.

‘만인은 평등하다’는 인권 개념이 인류사에 등장한 건 불과 250여 년 전의 일이다. 미약했던 단어는 세계대전 같은 반인륜적 풍파 속에서도 살아남아 어느덧 자명한 도덕원칙처럼 자리잡았다. 20세기의 정치인들 중 인권이라는 이상을 한번이라도 연설에 담지 않은 자를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언어와 현실, 정치와 실재의 간극은 여느 직장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만 봐도 쉽게 느낄 수 있다. 한센병 환자들을 짐승처럼 대했던 전남 고흥군의 소록도 섬에서도 인권은 폐지 한 장의 값어치조차 되지 못했다. 


이런 섬의 환자들을 처음으로 ‘인간’으로 대했기에,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83)와 마가렛 피사렉(82)에게 ‘천사’라는 칭호는 아깝지 않다. 두 사람은 ‘저주받은 땅’에 처음으로 인권 개념을 뿌리내렸고, 40년에 걸쳐 이를 몸소 실천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이라며 하염없이 자신을 낮추고 있다. 두 간호사의 남다른 노력과 겸손은 50여년이 지난 지금, 국가차원에서의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봉사하던 시절 마리안느(왼쪽)와 마가렛(오른쪽). 영화 ‘마리안느와마가렛’ 스틸컷.

한센병 환자의 엄마 그리고 친구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간호학교 동창생이다. 1952년 각각 열 여덟, 열 일곱의 나이로 입학한 두 사람은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가까워졌다. 두 친구는 같은 꿈을 꾸었다. 병들고 힘든 자들을 위해 평생 봉사하겠다는 게 소망이었다. 

졸업 후 두 사람은 한국의 한센병 환자 마을에 간호사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수업시간에 들었던,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됐다던 그 나라였다. 1962년 마리안느가 먼저 전남 고흥의 소록도를 찾았다. 4년 후 마가렛도 뒤를 따랐다. 5년 정도만 돕는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계획했던 5년이 반평생으로 늘어나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소록도에 한센병 환자가 수용된 건 1916년부터다. 한센균 감염으로 발병하는 이 병은 예방도 치료도 가능하다. 하지만 의학지식이 부족했던 과거엔 지독한 전염병으로 여겨졌다. 감염되면 피부가 괴사돼 외모가 바뀌었기 때문에 한센명 환자에 대한 멸시도 심했다. 소록도에 이들을 수용한 건 치료를 빙자한 차별의 제도화였다. 환자들은 외부와 괴리된 것은 물론, 병의 유전을 막는다는 미명하에 강제 단종수술을 당했다. 지난 2월 대법원은 처음으로 한센병 환자들의 강제 낙태ㆍ단종수술이 국가 책임이란 판결을 내렸다. 

의사들 조차 접촉을 피하느라 꼬챙이로 환부를 툭툭 치던 시절, 20대의 앳된 간호사들은 맨 손으로 환자의 살을 만지고 함께 밥을 먹었다. 한 완치환자는 “가족조차 부끄러워하는 내 등을 두 분이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었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매일 새벽이면 병실마다 방문해 따뜻한 우유를 나눠주고 환자를 점검했다. 환자들의 생일이면 자신들이 사는 기숙사에 초대해 직접 구운 빵을 대접했다.

허름한 창고를 고쳐 미감아(한센병 환자의 자녀를 ‘아직 감염되지 않은 아이’로 부르는 차별적 표현)들을 돌보는 영아원을 만든 것도 마리안느와 마가렛이었다. 정부의 지원이 늘 부족했기 때문에 두 간호사는 오스트리아의 지인 및 봉사단체에 편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이 보낸 후원금으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결핵병동과 정신병동, 목욕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죽은 환자들의 옷을 수선해 입는 검소한 일생을 살았다. 청빈 순명 정결을 서약하되 수녀원 밖에 머무르는 ‘재속회’ 소속의 평신도임에도 그들이 ‘수녀’라 불린 건 이런 봉사정신 때문일 것이다. 

두 간호사는 40년을 살아온 아름다운 섬을, 그곳의 사람들을 사랑했다. 한센인들은 두 사람을 ‘큰 할매’와 ‘작은 할매’라 불렀다. 하지만 할매들은 2005년 11월 조용히 섬을 떠났다. 70세의 고령이 된 자신들이 되레 부담이 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에는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대단히 감사 드립니다’라고 써 있었다. 두 사람 덕에 연을 맺은 이공순(75) 전봉업(71)씨 부부는 두 수녀가 떠난 뒤 석 달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엄마 잃은 고통’에 울었다고 한다.

“제가 하는 일 중 특별한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고국으로 떠났지만 그들의 봉사정신은 또 다른 이의 가슴에 남아 싹을 틔웠다. 국립소록도병원에서 17년간 약사로 일했던 강경애(58)씨는 2002년부터 에티오피아와 네팔 등을 오가며 에이즈 및 나병환자들을 간호하고 있다. 강씨는 소록도에서 만난 두 간호사의 박애정신을 닮고자 해외 봉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소록도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최연정(44)씨 역시 두 간호사처럼 살겠다는 뜻으로 2015년부터 볼리비아로 떠나 빈민구호에 헌신하고 있다. 소록도성당의 김연준(47) 주임신부는 두 사람의 이름을 딴 사단법인 마리안마가렛을 만들고 반 세기 전 한국처럼 도움이 필요한 나라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4월 11년 만에 방한해 전남 고흥 소록도를 찾은 마리안느(왼쪽)씨가 환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마가렛씨는 치매 투병으로 인해 방한하지 못했다. 소록도성당 제공

두 간호사의 헌신을 기리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부터 전남 고흥군은 (사)마리안마가렛, 국립소록도병원 및 개별 후원자등과 함께 두 사람을 기리는 사업을 추진해왔다. 9월에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마리안느-마가렛 노벨평화상 범국민 추천위원회'(가칭)가 출범할 예정이다. 

하지만 두 간호사는 세간의 관심도, 노벨평화상 후보 추진도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4월 국립소록도병원 10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았던 마리안느는 “제가 하는 일 중 특별한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환자들과) 지금까지 제일 좋은 친구로 살았었고 그저 부름에 따라 온 일은 알릴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고국으로 돌아간 뒤 현재 각각 대장암과 치매 투병을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주는 최저수준의 국가연금만으로 이어가는 청빈한 노후다. 광주대교구와 소록도성당이 제안한 금전적 지원도 모두 사양했다. 이런 두 간호사가 상보다 더 바라는 건,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던 그들의 삶에 공감한 또 다른 이의 선행이 아닐까.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출처 : 한국일보  소록도 할매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posted by 백발노인

미디어 투데이에 좋은 기사 하나가 떴다.

맞아도 되는 기자는 없다.


일부만 옮겨보면...


중국 측 경호원 한국 기자 폭행 사건은 심각한 사안이다. 어떤 이유가 됐든 취재진에 대한 폭행은 발생해선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시 쓰러진 기자 얼굴을 경호원이 발로 가격하는 장면을 보면, 경호과정에서 발생한 단순충돌로 보기 어렵다. 이런 불상사가 문재인 대통령 중국 국빈 방문 중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중국 당국이 책임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다.


이번 사건은 폭행의 심각성과 별개로 한국 언론에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졌다. 한국 취재진이 중국측 경호원들에 의해 물리적 폭행을 당했는데도 비난 여론은 경호원이 아니라 기자를 향했다. 심지어 인터넷과 SNS에선 ‘맞을 짓 했다’ ‘오죽했으면 맞았을까’ ‘기레기는 맞아도 싸다’ ‘더 맞아야 정신 차린다’ 등의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한국 언론과 기자들에 대한 국민 신뢰가 얼마나 바닥으로 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 다.  



▲ 중국 경호인력들이 이충우 매일경제 사진기자(가운데 모자이크 부분)를 둘러싸고 복도로 나가고 있다. 사진=CBS 제공 영상 캡쳐

▲ 중국 경호인력들이 이충우 매일경제 사진기자(가운데 모자이크 부분)를 둘러싸고 복도로 나가고 있다. 사진=CBS 제공 영상 캡쳐


이런 상황은 언론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일부 언론은 문 대통령 방중 기간 동안 불필요하고 지엽말단적인 상황을 부각시키며 방중 성과를 폄훼했다. 한중 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어버린 박근혜 정부의 외교 난맥상은 고려하지 않은 채 근거도 불분명하고 실체도 없는 ‘저자세 외교’ ‘굴요외교’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파면 당한 대통령 박근혜씨가 의전과 패션에만 신경 쓰다 한중 관계는 물론 한국 외교를 바닥으로까지 추락시킨 게 엊그제 일이다. 이런 상황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 입장에선 일부 언론의 문 대통령 방중 보도를 악의적·편파적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런데 윗글을 읽고 나니 갑자기 어렸을 때 읽은 ‘양치기 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양치기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치자 동네사람들이 모두 소년을 구하기 위해 몽둥이를 들고 나타났으나 거짓말이 3번째 반복되었을 때 동네사람들이 아무도 구해주러 오지 않아서 진짜 늑대에게 잡혀 먹혔다는 이야기.


생각해 보자. 그 소년은 사악한 목적이 없었다. 그저 양치기로 앉아 있자니 너무 심심하고 무료해서 재미삼아 거짓말을 한 것 뿐이다. 덕분에 동네사람들도 모처럼 재미를 느꼈을 것이다. 무료한 시골생활에 얼마나 따분했을까? 더구나 소년을 구한다는 사명감에 힘껏 달리기 운동도 했을 터이니 건강에도 보탬이 됐을 거다. 그런데도 불쌍한 소년은 늑대에게 찢겨 죽어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사악한 목적을 가지고 거짓말을 해대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언론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 데스크의 잘못이지 말단 기자나 사진기자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맞는 말이다. 이번에 얻어터진 기자야 말로 알고 보면 정말 재수없고 불쌍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왜 나는 저런 글을 쓰는 기자들에 대한 미움이 가시지 않을까? 아마도 어렸을 때 양치기 소년에 대한 우화를 좀 더 철저히 배우지 못한 탓이리라. 


아무튼 이 글의 제목은 ‘죽어도 되는 소년은 없다.’로 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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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발노인

생활의 재발견


요즈음 나의 생활은 흥미진진함의 연속이다. 쥐뿔도 대단할 게 없는 화백의 일상이지만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정신착란 증세의 일종일 확률이 가장 높다. 때마침 오늘 아침 우리의 판타스틱 고사장이 감사의 일기를 날마다 써보라 알려주시네. 꾹 참고 두달만 써보면 변화를 느낄 수 있다고... 사실 나는 이미 하루하루 감사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부터가 감사한 일 아니겠는가? 이미 우리의 나이가 그리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도 당분간 감사의 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나의 삶이 어떻게 감사하고 어떻게 즐거운 것인지를 자랑하며 기록해 놓기 위해서이다. 이름하여 ‘생활의 재발견’.. 학창시절 읽었던 임어당 박사의 ‘생활의 발견’을 모방한 것이다. 상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이 든 노인이 자신의 주변 사소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적어 내려간 수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에 내가 이렇게 발표를 하는 것은 매일 일기를 쓰겠다는 공언을 함으로써 나 자신을 구속하기 위함이다. ‘생활의 재발견’이라는 일기는 나의 블로그에 이전의 일상생활이라는 카테고리를 '생활의 재발견'이라 명칭을 바꾸고 오늘부터 매일 일기를 써서 올릴 계획이다. 물론 비공개이다. 그래야 일기지 남이 읽으라고 공개한다면 일기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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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의 감사톡톡

감사일기의 힘

송영숙 변호사가 <대한변협신문>에 ‘감사일기의 힘’이란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처음엔 솔직히 ‘감사일기 쓴다고 인생이 바뀔까’ 의구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꾹 참고 두 달을 넘기자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부정적인 생각이 조금씩 사라져 갔습니다. 둘째, 당연하게 여겼던 사소한 것들에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타인의 도움이 있기에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넷째,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섯째,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자라났습니다. 우리도 감사일기로 마음 근육을 키워볼까요? 

(정지환 감사경영연구소장)



posted by 백발노인


모처럼 토요일에 시간 여유가 있어 느긋하게 아점을 먹고 2호선 타고 시청역에 내리니 낮 12. 딱히 할 일도 없이 서울시청 지하에 위치한 시민청, 그리고 전시실 몇 개 둘러보다 착한가게에 가서 커피 한잔 마시고 지상으로 올라와 보니 온통 노인들만 가득한 맞불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곳엔 노숙자 느낌의 영감님들이 태극기를 들고 왔다 갔다 하고 있었으며 사람들도 무대 앞에만 조금 모여 있을 뿐 그리 많지 않았다.

 

덕수궁 돌담길을 돌며 서울 역사박물관으로 가던 중 프랑크푸르트에서 보던 조형물로 유명한 흥국생명 빌딩엘 난생 처음 들렸다. 그 때 시각이 오후 3시경. 사실은 매주 토요일마다 대전에서 촛불행사에 참여하려 KTX타고 올라오는 고교 동창과 저녁이나 함께 하자고 약속한 시각이 오후 6. 동행한 마눌님이 허리가 아프고 좀 쉬고 싶다 해서 우연히 흥국생명 빌딩에 들렀는 데 그곳에 영화관이 있을 줄이야. 때마침 2016년 가장 좋은 영화중의 하나라고 호평을 받는 라라랜드가 상영 중이었다.

 

매표소에 들러 표를 구매하려 했더니 매진이랜다. 영화 상영 시작이 오후 4시라 끝나면 친구와의 약속도 빠듯하고 해서 그냥 돌아서려는 데 갑자기 아저씨!!’ 하고 부른다. 인터넷 예매표 2장이 취소되어 좌석이 생겼단다. 그래서 좀처럼 영화구경을 하지 못하던 우리로서는 운좋게 2016년을 마감하면서 영화 한편을 보게 되었다. 사랑에 관한 뮤지컬 영화라서 애틋한 추억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감미로운 영화일 수 있었겠으나 우리 부부에게는 그저 무덤덤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조금 늦겠다고 미리 연락해둔 친구 부부와 음식점에서 만난 것이 저녁 630분경. 식사를 마치고 광화문 촛불에 합류한 시각은 7시 반경 이었다. 여느 때 촛불집회처럼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움직이는 데 힘들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자주 참석치는 못하고 3번째 참석이었는 데 평화로운 집회였으며 날씨도 겨울날씨치곤 따뜻한 편이어서 정말 축제 분위기가 나는 집회였다. 우리의 자그마한 힘이 모여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다면 이보다 신나는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마눌님께서도 즐거워 하셨지만 허리가 불편하고 또한 늙은 나이에 밤늦게까지 있기에는 무리일 것 같아서 제야의 밤 행사는 참석치 못하고 밤 10시경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의소리 '박근혜 비호 노인들...응징 취재 현장

https://youtu.be/_j3aH9uqC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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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해가 지나네. 연말이 되면 가뜩이나 어수선한 판국에 망년회니 뭐니 왜 그리 바쁜지... 특히 내 블로그에 들어와 보니 그동안 주 1회 포스팅하겠다는 약속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더만. 헐수없이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몇가지 생각을 간단하게나마 적어보기로 하자. 


1. 장학금


언젠가 우리집에서 기르던 강아지 이름을 장학금이라 지었던 적이 있었다.  호칭은 하끄미 였는 데 그만큼 장학금은 우리의 소원이었던 셈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풀어보기로 하고 최근에 전북 고창군 골프동호회에서 우리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 해서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고창에서 서울로 올라와 골프를 취미로 하시는 분들이 모여 연말 송년회 모임에서 의미있는 행사로 고창출신 장학숙 학생 6명에게 50만원씩 300만원을 수여한 것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금액의 과다를 떠나 이처럼 아름다운 행동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원장으로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고 이처럼 아름다운 분들의 뜻이 보다 다양한  형태로 퍼져 나가게 되길 기대해 본다.




2. 자원봉사


연말이 되면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가 도처에서 울린다. 우리 장학숙 직원들도 매년 12월 복지관에 자원봉사활동을 한댄다. 그래서 지난 9일에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방배복지관에 식사 봉사를 나갔다. 아침 9시에 복지관에 가서 식사준비를 하고 점심식사 배식 및 식사후 설겆이를 해주는 것인 데 이런 봉사활동이 난생 처음인 나로서는 많은 것을 느끼는 기회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자원봉사활동이란 것이 느낌이 참 좋은 것이라는 것. 또 항상 읊조렸듯이 새로운 것은 재미있다는 것. 인식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지만 행동이 바뀌어 인식이 바뀔 수 있다는 것..등 등 앞으로도 기회가 닿으면 봉사활동을 많이 할 것이며 봉사활동이야말로 우리가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을 굳혔다. 그런 생각에서인지 실제로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오더만.. 그래서 우리도 다음부턴 인원수를 조금 줄이되 횟수를 늘려서 자원봉사활동을 펼쳐보기로 하였다.     




3. 비선실세와 사자방 국정감사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처리과정을 보면 더 가관이다. 이미 오래전에 벌어진 일들인데 이제 그 꼬리가 드러나자 제대로 밝혀보자는 세력과 그냥 묻고 지나가자는 세력간에 치열한 다툼이 있는 상태이다. 검찰과 언론의 수준,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의 수준이 참으로 가관이다. 우리 국민들 수준이 제법 높다고 떠들어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민초들은 돌고돌아 자기에게 미쳐오는 그 영향을 파악하기엔 너무 지쳐있고 엄청난 규모의 사안에 대해서는 기득권이랄까 눈앞의 이익에 가려 사리분별이 뚜렷치 못한게 인간의 한계이다. 요즈음 나는 틈나는대로 팟빵(www.podbbang.com)이나 노컷뉴스 등 군소 인터넷 매체를 통해 진실에 접근해 보려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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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곳에 국선도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다. 국방대 연수중 국선도를 배웠는 데 돌이켜보면 내가 음양오행공부를 시작하면서 깨달음을 추구하며 그 당시 직장에서 접해본 운동중에 태극권, 기천문 등이있었는 데 특히 태극권은 최고수이신 이찬 사부님께 직접 배웠던 운동으로 그동안 꾸준히 연마를 했었더라면 지금쯤 어디선가 도장 하나쯤은 운영하고 있지 않았을까? 


천성이 부지런하거나 꾸준하지 못한 나는 한가지 운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런 저런 시도끝에 국방대에 갔을 때 국선도를 알게 되었는 데 국선도에도 몇가지 분파가 있고 그중에서도 내가 배운 것은 덕당 국선도라는 것도 그때에 알았다. 단전호흡과 스트레칭이 주된 내용으로 아침 일찍 국선도를 하고 나면 하루종일 개운한 느낌이고 몸이 특별히 달라진 느낌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몸이 불편한 느낌도 없어서 그동안 별다른 운동을 하지 못하던 나는 국선도라도 해얄텐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우연한 기회에 방배3동 동사무소에서 국선도에 다시 접하게 되었다. 방배3동과 우리 전라북도 장학숙간 MOU를 체결하는 행사를 계기로 방배3동 직원들과 몇차례 회동을 하던중 방배3동장께서 단전호흡이 몸에 좋으니 한번 신청해서 해보시라는 권유에 마지못해 끌려갔다가 한번 참석해 보니 이게 바로 내가 전에 했던 덕당 국선도가 아닌가? 즉각 전주에 연락해서 장농에 쳐박아두었던 도복을 가져오라하고 국선도를 다시 시작하였다. 그래서 요즈음엔 풍납동에서 출근할 때에는 6시50분경 집을 나서고 저녁 늦게 퇴근할랴치면 아예 장학숙에서 자는 일이 잦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도장에 가면 주로 동네 어르신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할머님들이 검정띠를 두르고 투자법을 쉽사리 하고 계시며 사범님도 70가까운 할머니신데 대단한 경지에 오르신 분으로 몸의 유연함이 놀라울 정도이다. 오늘 아침엔 도복을 갈아입으며 '나이 먹어가며 재산이 있으면 뭐하나? 건강이 최고지' 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상당히 무게감있게 느껴지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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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블로그에 찾아왔다. 

황성옛터 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퇴직 1년여를 앞두고 이 블로그를 시작할 당시에는  매일 한 편씩 글을 포스팅하겠다는 결심을 공표하고 열씨미 글을 썼던 적이 있었는 데 이 결심이 무너지고나자 몇달에 걸쳐 블로그를 들르지도 않을 정도로 무심해져 버린 것을 보면 나라는 인간은 역시 어떤 사실을 공표하고 '남의 시선' 이라는 타율에 의존하여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인가 보다.


그래서 오늘 다시 앞으로는 '일주일에 한편 이상 블로그에 글을 올리겠다.'고 공표해 본다. 이렇게 결심하게 된 요인으로는 지난 8월 26일자 전라북도 서울장학숙(이름이 길다.. 앞으로는 전북장학숙이라 부르겠음) 원장에 부임하였는 데 조직을 운영하는 책임을 맡게 된 입장에서 장학숙 입사생들을 비롯한 조직의 구성원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블로그를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전북장학숙은 지방에서 뽑혀 올라온  인재들과 각종 고시 1차시험에 합격한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학업에 시간을 쪼개써야 할 입사생들에게 원장이 소통을 해보겠다고 대들면 누가 좋아할 것인가? 부임하면서 입사생들과의 접촉시간을 늘리고자 매일 오후 4시 이후에는 원장실 문을 개방하고 면담을 원하는 학생들은 제한없이 원장실을 찾아달라고 하였으나, 글쎄다. 현실적으로 얼마 정도의 효과를 거둘지는 아직은 미지수라 생각한다.


이전에 썼던 글들이 다소 근천스럽고 부끄러운 면이 없지 않으나 나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소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전 글들을 걍 그대로 두고 앞으로는 장학숙 활동이나 나의 소소한 감정들을 이곳에 털어놓음으로써 현실적 여건에 의해 소통에 장애가 되는 점을 극복해 보자는 것이다. 



전북장학숙 정문 양켠에 피어있는 능소화 - 예전에 문과에 장원급제한 사람이 귀향길에 오를 때 머리의 관에 꽂던 꽃이라서 '어사화'라고 부르기도 함.

 


20여년의 역사를 지닌 장학숙 입구 치고는 조금 황량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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