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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17. 23:30 옛이야기

옛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내가 미국 학술연수 시절 접했던 교수중에서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교수 한분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우리 세대 사람들 중에는 B.B.라하면 브리짓드 바르도라는 

육체파 여배우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나와 같은 학구파(?)는 Bela Balassa 교수가 생각난다.. 엣헴..흠..


왜 B.B.라하면 이분이 생각나느냐고? 

이름이 어렵자너.. 

그래서 내가 이분 이름을 B.B라는 약칭으로 외워 두었기 때문이다.


국제경제학분야에서 발랏사 교수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는 5단계 경제통합이론으로 유명하다고 하는 데

발라사교수는 수출주도형 성장옹호론자라는 점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내가 1989년에 죤스홉킨스대학에 경제학을 공부하러 갔을 때

그곳에는 후진국 경제성장이론과 관련하여

수출주도형 성장론자와 수입대체형 성장론자가 모두 포진해 있는 상황이었다.


후진국이 경제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수출에 역점을 두는 산업화 전략을 통해

성장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수출주도형 성장론자이며

지나친 개방과 대외의존도가 후진국 경제를 망칠 수 있기 때문에 

수출촉진보다는 자국내 수입대체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수입대체형 성장론자이다.


1960년대에 활발했던 이러한 성장전략이론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싱가포르, 대만 등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을 활용한 국가들이

상당한 수준의 경제성장 성과를 거둔 반면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 등 수입대체 위주의 성장전략을 채택한 국가들은 

모두 한때 외환위기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바 있어 

일단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이 옳다는 방향으로 정리가 되어가는 상황이었다.


발랏사 교수는 수출주도형 성장론자인 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4룡 국가들이 자신의 이론이 옳다는 점을

입증시켜주었다 해서 우리 동양인 학생들에게 무척 우호적인 분이셨다.

물론 본인도 항가리 출신으로서 비주류의 설움을 이해한다고나 할까?


그런데 내가 공부하러 미국에 갔던 1989년 당시 이분이 62세임에도 불구하고

뇌졸증으로 언어마비증세가 심하여 수업은 프린트물로 나누어 준 다음

학생들이 돌려가며 프린트물을 읽으면 발라사교수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학생이 잘못 읽거나 강조해야 될 부분이 있으면 '우우우~~'하고 소리치며 

다시 읽으라고 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한국인 학생들에게 우호적인 데다가 (학점이 후하다는 이야기)

어려운 영어를 현란하게 구사하는 게 아니고 프린트물로 수업이 진행되는 관계로

비교적 많은 한국학생들이 이분 강의를 수강하였으며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석사 과정 마지막 학기 기말고사를 치룬 1991년 5월초에

이분은 병상에서도 우리의 시험답안지를 받아 직접 채점을 하고

성적을 매긴 다음 운명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시험성적과 이분의 부고를 동시에 받게 되었는 데

운명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일을 충실하게 마치고 돌아가셨다는 점에서

나는 한동안 충격을 받은 느낌이었으며 

오늘날까지 이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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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발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