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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 4. 00:16 진실탐구

오늘 우연히 저녁 8시에 방영되는 KBS 스페셜 '검찰 개혁 앞에 서다' 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내가 TV는 별로 즐겨 보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본 것은 아니고 언뜻 방영되고 있는 것을 부분적으로 보았는 데 KBS가 갑자기 웬일?? 뒤늦게 입바른 소리를 하고 나서는 거다. 


정권교체기에 양다리를 걸치는 건가? 아무튼 그 방송을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아니 방송을 보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대한민국 검찰 정말 많이도 썪었다. 사회 모든 분야가 그러하다지만 사정의 칼날을 가지고 있는 검찰이 이 모양이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망연자실...

권력에 기생하여 호의호식 하려는 썩어빠진 관료들이 판치는 세상.

언론마저도 자신의 이해득실을 따져 궁민을 호도하려 드는 추악한 꼬락서니

우리나라의 미래가 참으로 걱정스럽다.


========< KBS 프로그램 소개 내용에서 퍼온 글 >==============================================


검찰, 개혁 앞에 서다


방송 : 2월 3일 (일) 저녁 8시 KBS 1TV
CP : 윤진규
PD : 이후락
 

최근 검사의 부패와 권한남용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검사실에서 피의자와 성관계를 가진 초임검사부터 
10억대 뇌물을 받은 부장급 검사를 거쳐 재벌에 봐주기 구형을 지시했다는 
검찰총장까지, 지위 고하를 막론한 검찰의 치부가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 ‘정치검찰’이라는 비아냥은 이미 오래되었다. 
견제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의 개혁방안을 찾아본다.
 
 

검사 비리, 알려진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2012년, ‘10억 뇌물 김광준 검사 사건’이 터지자 검찰은 그간 경찰이 8개월이나 해온 수사를 단 하루 만에 특임검사를 임명해 사건을 가져갔다.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의 부장급 검사 여럿이 관련돼 있다는 의혹을 받는 ‘윤 前 용산 세무서장 비리 사건’도 검찰은 경찰의 관련 압수수색 영장을 6회나 기각하며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검사들에 막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검사 관련 사건의 충격적 실체를 밝힌다.
 

 


인권보호보다 권력에 기생한 검찰 60년, 반성은 없었다

 


“수사는 경찰에 맡기고 검사에게는 기소권만 주자는 것은 법리상으로는 타당합니다만... 100년 후라면 모르겠지만...”(4대 검찰총장 한격만, 1954년)
 
강압적 일제 식민통치의 충실한 대리인으로부터 출발한 한국 검찰의 역사. 해방 이후, 군사정권을 거쳐 민주정부에 이르기까지 검찰은 항상 살아있는 권력에 발맞추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특권과 권력을 키워왔다. 그럼에도 검찰은 지금껏 한차례도 공식적으로 과거사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  ‘공익의 대표자’라는 자부심에 감춰져 있는 검찰의 어두운 과거사를 조명한다.
 
 
정치검찰의 민낯을 공개한다
 


검찰이 정치검찰의 행태를 보여온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정권에서의 행태는 도를 지나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총리실 민간인 불법 사찰사건’의 취재 결과, 검찰은 사건 처음부터 총리실과 청와대의 개입 사실을 알고도 이를 은폐한 것이 드러났다. 과연 대검중수부는 검찰의 말대로 거악을 척결해왔나?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 재벌에는 봐주기 수사로 일관하고 흘러간 정권과 비판적 언론은 무리한 법 적용으로 무자비하게 단죄해 온 정치검찰의 낮 뜨거운 실상을 조명해본다.
 

검찰 개혁,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지금까지 수 차례 시도된 검찰 개혁은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최고 권력과의 ‘주고 받기’나 국회 내 ‘전직 검사’를 이용한 방패막이, 때론 ‘스스로의 위장 개혁’을 내세우며 검찰개혁을 피해왔다. 하지만 2012년 윤대해 검사의 ‘위장 개혁’ 글에서 드러나듯 더 이상 검찰의 자정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막강한 검찰의 조직적 저항을 뚫고 어떻게 개혁을 완수할 수 있는지 전문가들과 함께 심층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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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발노인
2013. 2. 3. 08:51 옛이야기

일요일 아침

내 블로그를 일별해 보니 '옛이야기' 섹션이 상대적으로 부진하다.

'조화와 균형'을 생활철학 제 1호로 삼고 있는 나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

그래서 우리 직장 동기들 카페(최강 10기)에 

내가 예전에 올렸던 글 일부를 긁어와 포스팅 함으로써 균형을 맞추고자 한다.


아래 글은 내가 작년 2월 1일에 올렸던 글인데 

그날이 무지하게 추웠던 모양이지.

올해 2월 1일은 포근한 날씨에 하루종일 비가 내렸는 데...


 =============================================================

울고 넘는 박달재 - 추운 날씨에 동기들 잘 지내시라고... 

2012.02.01. 20:51


올들어 오늘이 가장 추운 날이라 한다.

내일은 더 추워진다니 공연히 어깨가 움츠러든다.

이럴 때 일수록 고개를 바짝들고 먼가 할일을 찾아야 한다.


해서 일전에 ‘비내리는 고모령’이란 글을 올리면서

우리나라 유행가중에 재미있는 게 많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 데

오늘은 ‘울고넘는 박달재’ 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천둥산 바악달재를 울고넘는 우리 님아 ... 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사실 박달재가 있는 산은 시랑산이고

천둥산은 이보다 8Km정도 서남쪽에 떨어져 있는 산으로

천둥산에 있는 고개는 다릿재라고 한다.

최초 작사가의 착각으로 천둥산 박달재라 잘못 알려진 것이라 하는 데

제천시에서는 이곳 박달재에 조그마한 공원과 노래비를 만들어 놓았다 하니

언제 틈나는 대로 색소폰들고 한번 찾아가서 한곡조 뽑을 일이다.



박재홍 / 울고넘는 박달재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임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임아

둘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박달재에 얽힌 이야기>------------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백운면 평동리에 이르렀는 데 마침 해가 저물어 박달은

어떤 농가에 찾아 들어가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이 집에는 금봉이라는 과년한 딸이 있었다.

사립문을 들어서는 박달과 눈길이 마주쳤다.

박달은 금봉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을 정도로 놀랐고,

금봉은 금봉대로 선비 박달의 의젓함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그날밤 삼경이 지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해 밖에 나가 서성이던 박달도

역시 잠을 못이뤄 밖에 나온 금봉을 보았다.

금봉의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선녀와 같아

박달은 스스로의 눈을 몇 번이고 의심하였다.

 

박달과 금봉은 금새 가까워졌고 이튿날이면 곧 떠나려던 박달은 더 묵게 되었다.

밤마다 두사람은 만났다.

그러면서 박달이 과거에 급제한 후에 함께 살기로 굳게 약속했다.

 

그리고 박달은 고갯길을 오르며 한양으로 떠났다.

금봉은 박달의 뒷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사립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서울에 온 박달은 자나깨나 금봉의 생각으로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금봉을 만나고 싶은 시(詩)만을 지었다.

 

난간을 스치는 봄바람은 이슬을 맺는데

구름을 보면 고운 옷이 보이고

꽃을 보면 아름다운 얼굴이 된다.

만약 천등산 꼭대기서 보지 못하면

달 밝은 밤 평동으로 만나러 간다.

 

과장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였던 박달은 결국 낙방을 하고 말았다.

박달은 금봉을 볼 낯이 없어 평동에 가지 않았다.

금봉은 박달을 떠나보내고는 날마다 성황당에서 박달의 장원급제를 빌었으나,

박달은 돌아오지 않았다.

 

금봉은 그래도 서낭에게 빌기를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박달이 떠나간 고갯길을 박달을 부르며 오르내리던 금봉은

상사병으로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금봉의 장례를 치르고 난 사흘 후에 낙방거사 박달은 풀이 죽어 평동에 돌아와

고개 아래서 금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땅을 치며 목놓아 울었다.

울다 얼핏 고갯길을 쳐다 본 박달은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박달은 벌떡 일어나 금봉의 뒤를 쫓아 금봉의 이름을 부르며 뛰었다.

 

고갯마루에서 겨우 금봉을 잡을 수 있었다.

와락 금봉을 끌어 안았으나 박달은 천길 낭떨어지로 떨어져 버렸다.

이런 일이 있는 뒤부터 사람들은 박달이 죽은 고개를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



==========================================================

(밑에 글 두편도 그곳에 예전에 올렸던 글이므로 옛이야기 섹션에 등록한 것임.

근데 옛 이야기가 맞긴 맞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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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발노인
2013. 2. 3. 08:29 옛이야기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나쁜 남편 best 3 사진입니다.


근데 왜 나쁜 남편이라 하는 지 나는 이해가 잘 안가고


좋은 부인 best 3 가 더 맞는 말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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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발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