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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 3. 08:51 옛이야기

일요일 아침

내 블로그를 일별해 보니 '옛이야기' 섹션이 상대적으로 부진하다.

'조화와 균형'을 생활철학 제 1호로 삼고 있는 나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

그래서 우리 직장 동기들 카페(최강 10기)에 

내가 예전에 올렸던 글 일부를 긁어와 포스팅 함으로써 균형을 맞추고자 한다.


아래 글은 내가 작년 2월 1일에 올렸던 글인데 

그날이 무지하게 추웠던 모양이지.

올해 2월 1일은 포근한 날씨에 하루종일 비가 내렸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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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넘는 박달재 - 추운 날씨에 동기들 잘 지내시라고... 

2012.02.01. 20:51


올들어 오늘이 가장 추운 날이라 한다.

내일은 더 추워진다니 공연히 어깨가 움츠러든다.

이럴 때 일수록 고개를 바짝들고 먼가 할일을 찾아야 한다.


해서 일전에 ‘비내리는 고모령’이란 글을 올리면서

우리나라 유행가중에 재미있는 게 많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 데

오늘은 ‘울고넘는 박달재’ 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천둥산 바악달재를 울고넘는 우리 님아 ... 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사실 박달재가 있는 산은 시랑산이고

천둥산은 이보다 8Km정도 서남쪽에 떨어져 있는 산으로

천둥산에 있는 고개는 다릿재라고 한다.

최초 작사가의 착각으로 천둥산 박달재라 잘못 알려진 것이라 하는 데

제천시에서는 이곳 박달재에 조그마한 공원과 노래비를 만들어 놓았다 하니

언제 틈나는 대로 색소폰들고 한번 찾아가서 한곡조 뽑을 일이다.



박재홍 / 울고넘는 박달재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임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임아

둘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박달재에 얽힌 이야기>------------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백운면 평동리에 이르렀는 데 마침 해가 저물어 박달은

어떤 농가에 찾아 들어가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이 집에는 금봉이라는 과년한 딸이 있었다.

사립문을 들어서는 박달과 눈길이 마주쳤다.

박달은 금봉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을 정도로 놀랐고,

금봉은 금봉대로 선비 박달의 의젓함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그날밤 삼경이 지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해 밖에 나가 서성이던 박달도

역시 잠을 못이뤄 밖에 나온 금봉을 보았다.

금봉의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선녀와 같아

박달은 스스로의 눈을 몇 번이고 의심하였다.

 

박달과 금봉은 금새 가까워졌고 이튿날이면 곧 떠나려던 박달은 더 묵게 되었다.

밤마다 두사람은 만났다.

그러면서 박달이 과거에 급제한 후에 함께 살기로 굳게 약속했다.

 

그리고 박달은 고갯길을 오르며 한양으로 떠났다.

금봉은 박달의 뒷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사립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서울에 온 박달은 자나깨나 금봉의 생각으로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금봉을 만나고 싶은 시(詩)만을 지었다.

 

난간을 스치는 봄바람은 이슬을 맺는데

구름을 보면 고운 옷이 보이고

꽃을 보면 아름다운 얼굴이 된다.

만약 천등산 꼭대기서 보지 못하면

달 밝은 밤 평동으로 만나러 간다.

 

과장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였던 박달은 결국 낙방을 하고 말았다.

박달은 금봉을 볼 낯이 없어 평동에 가지 않았다.

금봉은 박달을 떠나보내고는 날마다 성황당에서 박달의 장원급제를 빌었으나,

박달은 돌아오지 않았다.

 

금봉은 그래도 서낭에게 빌기를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박달이 떠나간 고갯길을 박달을 부르며 오르내리던 금봉은

상사병으로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금봉의 장례를 치르고 난 사흘 후에 낙방거사 박달은 풀이 죽어 평동에 돌아와

고개 아래서 금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땅을 치며 목놓아 울었다.

울다 얼핏 고갯길을 쳐다 본 박달은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박달은 벌떡 일어나 금봉의 뒤를 쫓아 금봉의 이름을 부르며 뛰었다.

 

고갯마루에서 겨우 금봉을 잡을 수 있었다.

와락 금봉을 끌어 안았으나 박달은 천길 낭떨어지로 떨어져 버렸다.

이런 일이 있는 뒤부터 사람들은 박달이 죽은 고개를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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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글 두편도 그곳에 예전에 올렸던 글이므로 옛이야기 섹션에 등록한 것임.

근데 옛 이야기가 맞긴 맞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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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발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