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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제 일기도 그랬지만 오늘 일기도 12월 26일 아침에 쓰고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몸살, 고열로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앞서 적어놓았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당일인 25일에도 성탄절 미사에도 참석치 못하고 집에서 푹 쉬면서 몸을 추스렸더니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이제(26일 아침)는 이빨만 아픈 상태이다. 


종일 자다 깨다를 반복한 탓인지 밤늦게 KBS 1에서 방영된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라는 다큐영화를 볼 때엔 그리 졸립지 않았다. 지난번 소록도에 가서도 두분의 이름과 함께 헌신적인 봉사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 데 막상 영상으로 편집된 두분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인간으로 환생한 천사라는 느낌이 들었다. 


종일 집에서 빈둥댄 탓으로 별로 적을 이야기도 없으니 두분 관련기사 한편을 긁어 오는 것으로 오늘의 일기를 채운다.


[인물 360˚] ‘소록도 할매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기사등록 : 2017.08.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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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천사’라 불리는 간호사 마가렛(왼쪽)와 마리안느(오른쪽)가 전남 고흥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법무부 제공.

‘만인은 평등하다’는 인권 개념이 인류사에 등장한 건 불과 250여 년 전의 일이다. 미약했던 단어는 세계대전 같은 반인륜적 풍파 속에서도 살아남아 어느덧 자명한 도덕원칙처럼 자리잡았다. 20세기의 정치인들 중 인권이라는 이상을 한번이라도 연설에 담지 않은 자를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언어와 현실, 정치와 실재의 간극은 여느 직장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만 봐도 쉽게 느낄 수 있다. 한센병 환자들을 짐승처럼 대했던 전남 고흥군의 소록도 섬에서도 인권은 폐지 한 장의 값어치조차 되지 못했다. 


이런 섬의 환자들을 처음으로 ‘인간’으로 대했기에,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83)와 마가렛 피사렉(82)에게 ‘천사’라는 칭호는 아깝지 않다. 두 사람은 ‘저주받은 땅’에 처음으로 인권 개념을 뿌리내렸고, 40년에 걸쳐 이를 몸소 실천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이라며 하염없이 자신을 낮추고 있다. 두 간호사의 남다른 노력과 겸손은 50여년이 지난 지금, 국가차원에서의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봉사하던 시절 마리안느(왼쪽)와 마가렛(오른쪽). 영화 ‘마리안느와마가렛’ 스틸컷.

한센병 환자의 엄마 그리고 친구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간호학교 동창생이다. 1952년 각각 열 여덟, 열 일곱의 나이로 입학한 두 사람은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가까워졌다. 두 친구는 같은 꿈을 꾸었다. 병들고 힘든 자들을 위해 평생 봉사하겠다는 게 소망이었다. 

졸업 후 두 사람은 한국의 한센병 환자 마을에 간호사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수업시간에 들었던,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됐다던 그 나라였다. 1962년 마리안느가 먼저 전남 고흥의 소록도를 찾았다. 4년 후 마가렛도 뒤를 따랐다. 5년 정도만 돕는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계획했던 5년이 반평생으로 늘어나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소록도에 한센병 환자가 수용된 건 1916년부터다. 한센균 감염으로 발병하는 이 병은 예방도 치료도 가능하다. 하지만 의학지식이 부족했던 과거엔 지독한 전염병으로 여겨졌다. 감염되면 피부가 괴사돼 외모가 바뀌었기 때문에 한센명 환자에 대한 멸시도 심했다. 소록도에 이들을 수용한 건 치료를 빙자한 차별의 제도화였다. 환자들은 외부와 괴리된 것은 물론, 병의 유전을 막는다는 미명하에 강제 단종수술을 당했다. 지난 2월 대법원은 처음으로 한센병 환자들의 강제 낙태ㆍ단종수술이 국가 책임이란 판결을 내렸다. 

의사들 조차 접촉을 피하느라 꼬챙이로 환부를 툭툭 치던 시절, 20대의 앳된 간호사들은 맨 손으로 환자의 살을 만지고 함께 밥을 먹었다. 한 완치환자는 “가족조차 부끄러워하는 내 등을 두 분이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었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매일 새벽이면 병실마다 방문해 따뜻한 우유를 나눠주고 환자를 점검했다. 환자들의 생일이면 자신들이 사는 기숙사에 초대해 직접 구운 빵을 대접했다.

허름한 창고를 고쳐 미감아(한센병 환자의 자녀를 ‘아직 감염되지 않은 아이’로 부르는 차별적 표현)들을 돌보는 영아원을 만든 것도 마리안느와 마가렛이었다. 정부의 지원이 늘 부족했기 때문에 두 간호사는 오스트리아의 지인 및 봉사단체에 편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이 보낸 후원금으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결핵병동과 정신병동, 목욕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죽은 환자들의 옷을 수선해 입는 검소한 일생을 살았다. 청빈 순명 정결을 서약하되 수녀원 밖에 머무르는 ‘재속회’ 소속의 평신도임에도 그들이 ‘수녀’라 불린 건 이런 봉사정신 때문일 것이다. 

두 간호사는 40년을 살아온 아름다운 섬을, 그곳의 사람들을 사랑했다. 한센인들은 두 사람을 ‘큰 할매’와 ‘작은 할매’라 불렀다. 하지만 할매들은 2005년 11월 조용히 섬을 떠났다. 70세의 고령이 된 자신들이 되레 부담이 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에는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대단히 감사 드립니다’라고 써 있었다. 두 사람 덕에 연을 맺은 이공순(75) 전봉업(71)씨 부부는 두 수녀가 떠난 뒤 석 달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엄마 잃은 고통’에 울었다고 한다.

“제가 하는 일 중 특별한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고국으로 떠났지만 그들의 봉사정신은 또 다른 이의 가슴에 남아 싹을 틔웠다. 국립소록도병원에서 17년간 약사로 일했던 강경애(58)씨는 2002년부터 에티오피아와 네팔 등을 오가며 에이즈 및 나병환자들을 간호하고 있다. 강씨는 소록도에서 만난 두 간호사의 박애정신을 닮고자 해외 봉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소록도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최연정(44)씨 역시 두 간호사처럼 살겠다는 뜻으로 2015년부터 볼리비아로 떠나 빈민구호에 헌신하고 있다. 소록도성당의 김연준(47) 주임신부는 두 사람의 이름을 딴 사단법인 마리안마가렛을 만들고 반 세기 전 한국처럼 도움이 필요한 나라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4월 11년 만에 방한해 전남 고흥 소록도를 찾은 마리안느(왼쪽)씨가 환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마가렛씨는 치매 투병으로 인해 방한하지 못했다. 소록도성당 제공

두 간호사의 헌신을 기리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부터 전남 고흥군은 (사)마리안마가렛, 국립소록도병원 및 개별 후원자등과 함께 두 사람을 기리는 사업을 추진해왔다. 9월에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마리안느-마가렛 노벨평화상 범국민 추천위원회'(가칭)가 출범할 예정이다. 

하지만 두 간호사는 세간의 관심도, 노벨평화상 후보 추진도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4월 국립소록도병원 10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았던 마리안느는 “제가 하는 일 중 특별한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환자들과) 지금까지 제일 좋은 친구로 살았었고 그저 부름에 따라 온 일은 알릴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고국으로 돌아간 뒤 현재 각각 대장암과 치매 투병을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주는 최저수준의 국가연금만으로 이어가는 청빈한 노후다. 광주대교구와 소록도성당이 제안한 금전적 지원도 모두 사양했다. 이런 두 간호사가 상보다 더 바라는 건,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던 그들의 삶에 공감한 또 다른 이의 선행이 아닐까.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출처 : 한국일보  소록도 할매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posted by 백발노인

미디어 투데이에 좋은 기사 하나가 떴다.

맞아도 되는 기자는 없다.


일부만 옮겨보면...


중국 측 경호원 한국 기자 폭행 사건은 심각한 사안이다. 어떤 이유가 됐든 취재진에 대한 폭행은 발생해선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시 쓰러진 기자 얼굴을 경호원이 발로 가격하는 장면을 보면, 경호과정에서 발생한 단순충돌로 보기 어렵다. 이런 불상사가 문재인 대통령 중국 국빈 방문 중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중국 당국이 책임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다.


이번 사건은 폭행의 심각성과 별개로 한국 언론에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졌다. 한국 취재진이 중국측 경호원들에 의해 물리적 폭행을 당했는데도 비난 여론은 경호원이 아니라 기자를 향했다. 심지어 인터넷과 SNS에선 ‘맞을 짓 했다’ ‘오죽했으면 맞았을까’ ‘기레기는 맞아도 싸다’ ‘더 맞아야 정신 차린다’ 등의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한국 언론과 기자들에 대한 국민 신뢰가 얼마나 바닥으로 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 다.  



▲ 중국 경호인력들이 이충우 매일경제 사진기자(가운데 모자이크 부분)를 둘러싸고 복도로 나가고 있다. 사진=CBS 제공 영상 캡쳐

▲ 중국 경호인력들이 이충우 매일경제 사진기자(가운데 모자이크 부분)를 둘러싸고 복도로 나가고 있다. 사진=CBS 제공 영상 캡쳐


이런 상황은 언론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일부 언론은 문 대통령 방중 기간 동안 불필요하고 지엽말단적인 상황을 부각시키며 방중 성과를 폄훼했다. 한중 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어버린 박근혜 정부의 외교 난맥상은 고려하지 않은 채 근거도 불분명하고 실체도 없는 ‘저자세 외교’ ‘굴요외교’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파면 당한 대통령 박근혜씨가 의전과 패션에만 신경 쓰다 한중 관계는 물론 한국 외교를 바닥으로까지 추락시킨 게 엊그제 일이다. 이런 상황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 입장에선 일부 언론의 문 대통령 방중 보도를 악의적·편파적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런데 윗글을 읽고 나니 갑자기 어렸을 때 읽은 ‘양치기 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양치기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치자 동네사람들이 모두 소년을 구하기 위해 몽둥이를 들고 나타났으나 거짓말이 3번째 반복되었을 때 동네사람들이 아무도 구해주러 오지 않아서 진짜 늑대에게 잡혀 먹혔다는 이야기.


생각해 보자. 그 소년은 사악한 목적이 없었다. 그저 양치기로 앉아 있자니 너무 심심하고 무료해서 재미삼아 거짓말을 한 것 뿐이다. 덕분에 동네사람들도 모처럼 재미를 느꼈을 것이다. 무료한 시골생활에 얼마나 따분했을까? 더구나 소년을 구한다는 사명감에 힘껏 달리기 운동도 했을 터이니 건강에도 보탬이 됐을 거다. 그런데도 불쌍한 소년은 늑대에게 찢겨 죽어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사악한 목적을 가지고 거짓말을 해대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언론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 데스크의 잘못이지 말단 기자나 사진기자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맞는 말이다. 이번에 얻어터진 기자야 말로 알고 보면 정말 재수없고 불쌍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왜 나는 저런 글을 쓰는 기자들에 대한 미움이 가시지 않을까? 아마도 어렸을 때 양치기 소년에 대한 우화를 좀 더 철저히 배우지 못한 탓이리라. 


아무튼 이 글의 제목은 ‘죽어도 되는 소년은 없다.’로 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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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발노인

생활의 재발견


요즈음 나의 생활은 흥미진진함의 연속이다. 쥐뿔도 대단할 게 없는 화백의 일상이지만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정신착란 증세의 일종일 확률이 가장 높다. 때마침 오늘 아침 우리의 판타스틱 고사장이 감사의 일기를 날마다 써보라 알려주시네. 꾹 참고 두달만 써보면 변화를 느낄 수 있다고... 사실 나는 이미 하루하루 감사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부터가 감사한 일 아니겠는가? 이미 우리의 나이가 그리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도 당분간 감사의 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나의 삶이 어떻게 감사하고 어떻게 즐거운 것인지를 자랑하며 기록해 놓기 위해서이다. 이름하여 ‘생활의 재발견’.. 학창시절 읽었던 임어당 박사의 ‘생활의 발견’을 모방한 것이다. 상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이 든 노인이 자신의 주변 사소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적어 내려간 수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에 내가 이렇게 발표를 하는 것은 매일 일기를 쓰겠다는 공언을 함으로써 나 자신을 구속하기 위함이다. ‘생활의 재발견’이라는 일기는 나의 블로그에 이전의 일상생활이라는 카테고리를 '생활의 재발견'이라 명칭을 바꾸고 오늘부터 매일 일기를 써서 올릴 계획이다. 물론 비공개이다. 그래야 일기지 남이 읽으라고 공개한다면 일기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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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의 감사톡톡

감사일기의 힘

송영숙 변호사가 <대한변협신문>에 ‘감사일기의 힘’이란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처음엔 솔직히 ‘감사일기 쓴다고 인생이 바뀔까’ 의구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꾹 참고 두 달을 넘기자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부정적인 생각이 조금씩 사라져 갔습니다. 둘째, 당연하게 여겼던 사소한 것들에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타인의 도움이 있기에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넷째,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섯째,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자라났습니다. 우리도 감사일기로 마음 근육을 키워볼까요? 

(정지환 감사경영연구소장)



posted by 백발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