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한 때 '깨달음'을 추구하던 시절이 있었다.
음양오행을 공부하고 기천문과 국선도 등을 섭렵하면서 흔히 말하는 개똥철학, 즉 삶이란? 그리고 나의 존재이유, 생명의 본질,... 등 등에 관해서 나름의 규정을 해보려는 시도를 해본 시절이었다. 사춘기 시절에나 가져봄직한 의문들을 다시 살려냈다고나 할까?
음양오행을 공부하던 시절에는 정말 할 이야기가 무지 많았던 것 같다. 뒤늦게 배운 지식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의 명칭이나 습속 등이 쉽게 이해되는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왜 학교에서는 이런 것들을 가르쳐 주지 않았는지? (물론 내가 전공한 학과가 그런 분야와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기억나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가 매일 접하는 요일의 명칭, 일월화수목금토에 대한 것이다. 음양오행이 고스란히 들어있으나 상생도 상극 순도 아닌 이 명칭의 배열순서에 대해 나름의 분석을 해보고는 이것이 또한 서양의 작명과도 흡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기쁨에 몸을 떨던(?? 와!! 오버한다.) 시절. 타이거우즈가 매 결승전마다 음양의 대표적 색깔인 검정색과 빨간색 옷을 입고 승승장구하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읽었던 책중에 숭산스님의 '선의 나침반'이라는 책에 나온 깨달음의 본질을 설명해 주는 이야기, '영국의 경견' 이야기는 내가 주위사람들에게 몇번 써먹은 적이 있어서 지금도 기억이 난다. 하루종일 모형토끼를 쫒으며 경주에 시달리던 개 한마리가 어느날 생각을 바꿔 일상대로 달리지 않고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트랙을 돌아 온 모형토끼를 뒤돌아서 덥석 물었다. 그 개는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개라는 것이다. 모형토끼를 아직도 추구해야될 목표로 생각하고 있는 개가 깨달았다고? 하긴 어쩔 수 없는 운명의 굴레였겠지만... 하여튼 당시 '깨달음'은 나의 주관심사였으며 일상생활에서도 깨달음을 얻은 자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라는 관점에서 모든 일을 처리하려 했던 시절이었다.
노력의 덕분이었을까? 집착의 후유증이었을까? 당시엔 책을 읽으면 한줄의 글귀를 읽어도 글쓴이가 왜 그렇게 표현했나 하는 이유가 쉽게 머릿속에 짚히는 것같은 느낌이 오던 시절이었으니깐... 그래서 가족들에게 내가 아무래도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했더니 돌아온 마눌님의 말씀... '깨달은 사람이 집안 청소도 한번 안해줘요?' 한마디에 바로 깨갱... 깨갱이 머냐고.. 나도 한마디 했다 이거야. 즉, 아직도 깨달음을 못얻었다면 직장을 퇴직한 뒤엔 가족들을 홀연히 버리고 절에 들어가 깨달음을 추구하리라고 선언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내 나름대로 정리해본 사항 중에 하나인 '재미의 본질?'이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적합한 실체가 손에 잡히지 않아서 DCD 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보았는 데 DCD 란 Difference(차이), Change(변화), Deviation(일탈)을 줄인 말이다. 우리말로는 변화라는 용어로 표현해 보고 있지만 위에 세가지 개념을 함께 어우르는 단어가 없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이러한 세가지 개념을 기본으로 한 재미를 맛보는 하루를 보내기 위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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