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 우리 이삿날은 날씨가 아주 좋았다. 문을 열어놓고 짐을 들이는 데도 땀이 날 지경이었으니깐. 올겨울 들어 가장 좋은 날씨가 아니었나 싶다. 길일이 따로 있나? 이사하기 좋은 날씨면 길일이지.
같은 단지내에서 이사니깐 그리 힘들지 않았는 데도 주거지의 변경이 주는 스트레스는 역시 만만치 않다. 아직도 엘레베이터를 타면 자꾸 6자를 누른 대니깐. 새로 이사온 곳은 9층인데도... 그래서 치매방지 차원에서라도 우리 나이엔 한곳에 머물고 있는 것 보단 이리 저리 돌아 다니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필요하지 않나? 허나 떠돌아 다니는 여행정도는 어떨지 몰라도 주거지가 바뀌는 이사는 역시 부담스럽다. 더구나 다음 주 수원에서 더 큰 규모의 이사 물량이 내려 올 예정이어서 아직 이사가 마무리 된게 아니다.
마눌님은 서울 이사 준비해야 한다고 떠나 버리고 때마침 밖에는 겨울비가 추적주적 내리니 조금 가라않는 기분이다. 갑자기 강성철 시인의 '이사'라는 시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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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 강성철
짐을 챙긴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방랑벽을 조금은 건드리면서,
세월에 찌든 묵은 때를 벗겨 낸다.
가난에 취해 잠든 아내의 얼굴을 보며,
과연 바하의 선율이 스쳐갔던 얼굴이었을까?
동네가 높아 남보다 달빛을 먼저 받을 수 있다며,
아픈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던
아내여!
어제는 온 종일 너의 분신을 잡으려
온 집안을 뒤적거렸지
술래가 짐을 싸려한다, 나의 유년(幼年)
꼼짝 말고 있거라, 나의 유년
유채꽃밭 가로질러
잉잉거리는 벌통을 아쉬워 돌아보며,
죽어도 못 떠난다던
달보고 빵을 그리던, 유년
아버진 꿈에서도 그리시던 마지막 이사를 하셨다.
실성한 어머님이 퍼 올리시던 바닷물 속에
소라랑, 전복이랑, 미역이랑
그것이 아버지 피이며 살인 줄도 모르면서
노트도 사고, 연필도 사고,
우리 반에서는 처음으로 운동화도 샀다.
"너마저 바다에 빼앗길 수 없다."
첫 번째 이사가 시작되었고
"형, 홍수가 져도 걱정 없겠다, 우리는 높은데 사니까."
노아의 방주처럼 서울 변두리를 떠 다녔다.
밤새 설레던 꿈은 미지의 세계로 눈을 돌렸지만
잠들지 못한 우리의 영혼을
잠든 아내여, 아는가?
하나씩 얻음으로써 귀찮아지는 자유가 그립지도 않느냐?
살면서 얻은 구속, 그 테두리쯤에서 짐을 싸매는
늘 쓸쓸한 버릇
마지막 이사도 아내와 같이 갔으면 한다
그 때는 장이며, 냉장고며, 텔레비전이며
힘에 부칠 물건도 없이
그저 자유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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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성철 시인의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같은 직장동료중 시인이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이사를 할 때 느껴지는 쓸쓸함이 묻어나오도록 구성한 시적 언어에 감탄한 적이 있어 아직도 이 시를 기억한다. 그런데 강성철 시인이 제주도 출신인 것은 알았지만 최근 내가 새롭게 인식한 4.3사태의 영향이 본인의 일생에 깊숙히 드리워져 있었다는 것을 알고서는 함께 일하면서도 우리 역사에 대해 공감할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던 것이 아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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