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쯤이던가? 30년 넘게 근무하던 직장을 정년퇴직하고 할일없이 빈둥대다가 처음맞는 여름철 휴가를 만끽해 보겠다고 내가 타던 그랜저를 개조하였다. 이름하여 '전세계 최초의 그랜져 캠핑카'. 이름은 거창하지만 뭐 별난 것은 아니고 뒷좌석을 들어내고 차량에 맞춰 합판을 재단하여 누워서 잠을 잘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개조비용은 합판 및 재단용 공구 등을 사느라 150,000원 정도 들었다. 뒷트렁크 까지의 길이가 2m가 넘으니 어른 두명이 발을 뻗고 잘 수 있는 공간이 나온 셈이다. 차량 내부공간이 넉넉치 못하여 캠핑에 필요한 본격적인 장비는 설치하지 못했으니 캠핑카라는 용어보다는 슬리핑카가 더 적합하다 할 수 있겠다.
이젠 숙소 예약이나 비용을 걱정하지 않고 전국을 마구 돌며 여름휴가를 즐기면 될 판이었다. 근데 때마침 전라북도 서울장학숙 원장을 공모한다는 공고가 떠서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며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느라 이렇다할 여행은 하지 못하고 여느때 처럼 집에서 빈둥대며 여름휴가를 보냈다. 작년 8월말 이곳 서울장학숙 원장으로 부임하여 근무를 시작하였는 데 아직 근무기간이 짧다보니 올해에 주어진 휴가일수가 딱 2일.. 그나마도 지난 1월, 결혼기념일 일본여행에 쓰고나니 올해에도 여름휴가를 가기는 애초부터 글른 셈이었다.
그래서 이미 만들어 놓은 그랜져 슬리핑카를 활용도 할겸 어차피 글러먹은 여름휴가에 대한 분풀이(?)도 할겸 해서 사실은 지난 5월부터 주말만 되면 틈나는 대로 이곳 저곳을 마구 돌아다니고 있다. 잠자리가 옹색해서 싫다던 마눌님도 몇번 다니더니 이제는 매주마다 이번 주엔 어딜 가느냐고 물어보며 여행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나야 뭐 전에 언급했던대로 여행목적지를 설정하고 집을 나서는 성격이 아니어서 그저 발길(아니 자동차길) 닿는대로 돌아다니고 있으나 은영이가 둘째를 출산한 지난 6월 초 이후에는 손자 시훈이를 우리가 데리고 다녀야할 형편이어서 먼길을 가지는 못하고 있다.
5월 23~24일 부안, 서해안 만리포, 천리포, 백리포, 해미읍성, 공세리성당 거쳐 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