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미국여행 1104
워싱턴 근교인 매클린 지역은 도심과 출근거리가 가깝고 주변 편의시설과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어 주택가격이 비싼 곳이라 한다. 그곳에 위치한 장박사의 집은 평수가 한국기준으로 200평은 좋히 넘는 규모로 넒은 집에서 아이들과 떨어져 부부 둘이서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 친구들이 모두 모여 왕창 함께 살아보자는 농담을 건넸지만 사실 미국사회에서 성공한 장박사의 모습이 부러웠다.
그런 곳에 살지는 못하지만 이런 기회에 주변 동네를 한번 훑어 볼 수는 있는 일. 새벽에 눈을 뜬 나는 동네 한바퀴 산책을 위해 집을 나섰다. 미국의 주택가 길은 참으로 묘하다. 길이 반듯하게 나있는 것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데다가 수풀과 나무들이 틈틈히 어우러져 있어 길을 잃기 십상이다. 나 역시 들고 나간 핸드폰의 내비기능이 없었더라면 길을 잃었을지 모를 정도였다. 그날은 날씨가 아주 좋아 산책하기에는 최고의 날씨였다. 약 2시간여에 걸친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장박사가 걱정이 되어 집밖에 나와 기다리신다. 사람을 어떻게 보고...? (아니 내비를 어떻게 보고...가 정확한 표현인가? ^ ^)
해가 뜨는 동녁 하늘
아침으로 거하게 차려주신 한식을 잘 먹고 이제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쉐난도아 국립공원을 향하여 떠날 순간이다. 당초에는 플로리다의 키웨스트까지 갈 계획이었으나 일정이 축소되고 여행개념이 유유자적으로 바뀌면서 스모키마운틴도 아닌 쉐난도아 공원 정도로 정한 것이다. 매클린지역에서 쉐난도아 국립공원 입구 마을인 프런트 로얄까지는 65마일 정도. 넉넉잡고 한시간 반이면 도달할 가까운 거리이다. 그곳에서 나와 66번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중간에 버지니아 관광안내센터가 있는 휴게소에도 들리고 그야말로 유유자적 오전 11시경 프런트로얄에 도착하였다.
프런트 로얄에 들어서니 대형 상가지역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포도주를 포함한 몇가지 음료수와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등 혹시 산악지대에 들어가면 고립될지 모르니 몇가지 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였다. 차량 기름도 풀탱크로 채웠다. 나중에 알고보니 국립공원 도로상 곳곳에 위치한 주차 및 숙박지역에 주유소도 있고 가게도 있더만... 아무튼 며칠동안 볼티모어 워싱턴 도심지역에서 호의호식한 기분을 떨쳐내고 조금은 꺼칠할 산악지대로 들어서면서 고생 좀 해보자는 각오로 심호흡을 하였다. 그게 바로 재미의 본질 아니겠는가.
쉐난도아 공원 출입구에 늘어선 차량들 - 애뉴얼 패스는 50불이라 쓰여 있음.
쉐난도아 국립공원의 유명한 스카이라인 드라이브를 들어보신 적이 있는가? 나 역시 볼티모어에 살 적에도 들어본 것 같지 않고 이번에 현장에서 와서야 들어본 것으로 전장 105마일에 달하는 경치가 아주 좋은 산악 드라이브 길이라 해서 전거리를 주파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공원에 들어섰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입장할 차량이 여러줄로 길게 늘어서 있었으며 입장료는 차량 한대당 25불. 웬지 그럴듯한 경치가 펼쳐질 것같은 기대감을 갖게 하였다.
이후에 펼쳐지는 풍경과 느낌은 불립문자, 어찌 필설로 표현할 수 있으리요. 그저 '좋더라'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겠다. 쉐난도아 공원은 가을 단풍으로 그리 유명하대던데 때마침 단풍철 절정기라 아마도 내가 알고서 한국에서부터 계획을 세웠어도 그리 맞출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유튜브나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동영상과 사진이 많이 나온다. 잘 아시겠지만 아무리 멋지게 표현한 동영상이나 사진도 현장에서의 느낌을 표현하기엔 역부족이다.
쉐난도아 국립공원 <== 클릭!!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스카이라인 드라이브의 남쪽 끝 출입구 Rockfish Gap으로 향하여 달리던 중간 지점인 Skyland 부근에서 비가 흩뿌리기 시작하더니 Big Meadows 지역에 이르자 앞이 안보일 정도로 비가 내린다. 비가 조금 잦아들면 짙은 운무가 끼어서 10m 앞도 분간하기 힘들고.... 역시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무지 재미있는 여행으로 기억시켜주시려고 이런 장치를 마련해 놓으신 것이로구나 싶은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빅메도우즈 지역을 한계점으로 숙박시설과 식당시설이 갖추어진 스카이랜드로 되돌아 와서 숙박할 방이 있느냐고 물으니 주말이고 시즌이라서 sold out 되었댄다.
쏠드 아웉!!
잠시 후 닥칠 비극을 모르고 문제의 SUV안에서 좋아하고 계시는 마눌님.
이번 여행의 반환점인 Big Meadows에서 한 컷!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우린 한국에서 부터 항상 차박을 준비하고 다니지 않았던가. 비록 마눌님의 비협조로 최근들어 한번도 차박을 해본 경험은 없지만 마음 속엔 항상 꿈꾸어 오던 차박!!! 다행히 렌트카 차량도 SUV겠다 한국에서 가져온 얇고 가벼운 최첨단 소재로 만든 침낭도 있겠다 드디어 여행의 최정점에서 나의 꿈을 실현할 순간이 닥친 것이다.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운무가 끼인 데다가 날은 깜깜해지니 마눌님도 어쩔 수 없이 차박을 승락하셨지만 표정은 영 좋지 않다. 심기가 불편하신 것이다. 포도주를 마시자 해도 싫다고 하시고 맥주를 마시자 해도 싫다고 하신다. 추운 날씨에 술마시고 차박하다가는 얼어 죽는다며.... 차량을 주차장 가로등 환한 곳 밑에 주차해 놓고 우리는 SUV 차량 뒷자석을 접어 평평한 침대를 만든 다음 내일 아침까지 얼어죽지 않고 살아있기를 간절히 기도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