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장학숙

내 마음 속의 기숙사

백발노인 2014. 9. 29. 09:25

대학생 시절 서울에서 하숙을 하면서 내 마음 속에는 기숙사 생활에 대한 동경같은 게 있었다. 서구풍으로 잘 지어진 석조건물을 담쟁이가 뒤덮고 정원에는 수백년 된 아름드리 고목이 우거진 잔디밭. 머 그런 거였는 데 아마도 그리 생각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 즐겨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소설 중에 기숙사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유독 많았던 데 기인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현실적으로는 꾀죄죄한 하숙집에서 한끼 때우려는 듯 차려놓은 하숙집 밥상 때문이 아니었을까?

 

주인 아주머니가 밥먹으라고 부르면 대청마루에 우루루 몰려 앉아 맛있는 반찬은 제일 먼저 없어지고 혹시라도 저녁 늦게 하숙집에 들어선 날에는 그저 밥상을 차려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했던 시절. 그 시절에도 늦게 들어오면 밥상을 차려주지 않았던 하숙집도 있었다. 그런 하숙집은 대개 반찬이 좋다고 소문이 나서 하숙 희망자가 대기번호를 받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요즈음 하숙집 풍경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대학마다 기숙사 설치가 보편화 된 듯하고 BLT 방식의 고급 기숙사들도 들어서고 있다 하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다.

 

당시에도 서울대학교 내 정영사라는 기숙사가 있었대는 데 소수의 선발된 학생들에게만 알려진 기숙사로서 나처럼 성적이 뒤쳐진 학생들은 그 존재 자체도 몰랐던 시설이었대는 게 통탄스럽다. 얼마 전 그곳 출신 동기생을 만났는 데 방 한 개에 4명이 기숙하는 구조로 당시 유행하던 카드놀이인 마이티 인원수가 딱 되어 참으로 즐거운 대학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박정희 정, 육영수 영, 자를 따서 지은 정영사는 그야말로 대통령 부부가 직접 관심을 갖는 기숙사로서 명절 때에는 영부인이 근혜양을 데리고 직접 선물을 사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하며 당시로는 드물게 보는 시설인 전기세탁기가 설치되어 있었고 늦은 밤에는 라면도 끓여주어 학생들의 면학분위기를 맞춰주었다 한다. 그런데 사실 요즈음 우리 전북장학숙만 해도 층별로 세탁기는 기본이고 전자레인지나 뜨거운 물이 공급되어 밤늦게 라면을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화장실에는 비데도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시설면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다만 예산상의 제약과 집단급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식사의 질이 문제인 데 이따금씩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아침과 저녁밥을 먹어보면 까질해진 입맛 탓인지 아니면 높아진(?) 내 입맛 탓인지 급식의 질적 수준 향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영양사와 함께 급식 수준의 질을 향상시키려 수시 논의를 하고 있고 이번 달 급식설문조사는 예전에 비해 보다 심도있고 철저하게 시행토록 하였다. 우선은 식당의 분위기 개선을 위해 식탁 배열도 달리 해보고 음악도 틀어주고 있는 데 식당분위기가 크게 개선된 것 같지는 않드만. 왜냐하면 여러 명의 학생들이 함께 모여 즐겁고 왁자지껄한 식당분위기를 기대하고 있는 내 눈에 아직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띄엄띄엄 식탁에 혼자 앉아 귀에 이어폰을 꽂고 밥을 먹고 있는 학생들이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즈음 내 마음 속에 있는 현실적인 기숙사는 우선 식당부터 맛있는 음식이 제공되고 학생들이 왁자지껄 즐겁게 담소하며 식사를 하는 식당이 있는 기숙사이다.



장학숙에서 식당에 들어서노라면 보급관으로 근무했던 군대시절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