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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14. 11:39 그나머지

어제 모악산에 다녀오면서 느꼈던 

우리나라의 장묘풍습에 대한 이야기를 적다보니

예전 인도에 갔을 때 뭄바이 근처 음산한 공원 언덕이 생각났다.


가이드 이야기로는 그곳이 조장(천장이라고도 함) 의식을 행하는 곳으로

영혼이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을 돕기 위해 시체를 언덕위에 올려 놓으면 

독수리가 날아와 시체를 뜯어먹는 방식으로 장례를 지낸다는 것이다.


시체를 뜯어먹는 독수리를 중동 사막지역에서 수입해서 쓰는 데

수입 독수리가 처음 몇개월 동안은 시체를 뜯어먹지만

얼마 지나고 나면 식상해서 잘 먹지 않기 때문에 새로 독수리를 수입해야 되니

외화낭비 뿐만 아니라 시체를 먹던 독수리들의 숫자가 자꾸 늘어나고 있어

가뜩이나 지저분한 인도 시가지 풍경을 망쳐 놓는다고 설명하던 기억이 난다.


티베트문화로 부터 유래된 이와같은 조장의 풍습은 

수입독수리를 써야 되기 때문에 값이 비싸 부유층들이 사용하는 방식이라 

쉽게 없어질 것같지 않은 방식이라 하더라.




<사진 출처 : Google  Images >



인도를 가본지가 오래돼서 요즈음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오랜 전통과 풍습에 따라 자리잡은 장례문화가 

그리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수목장 등이 제시되고 있지만

일반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고

어제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제법 돈을 들여 그럴듯하게 묘지를 꾸며 놓는 것이

훌륭한 짓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침 우리나라 장례문화에 대해 좋은 견해를 표명해 놓은 글이 있어

여기에 클립해 둔다.


그런데 결론부분이 내 생각과는 상당히 다른 데

어차피 사후세계는 기본전제가 확 바뀌는 곳이니

15년 동안의 매장기간도 사실은 필요없고 


내가 죽으면 곧바로 화장을 해서 공원 한켠에 묻어두거나 

나무밑이나 들판에 뿌려달라고 유언을 함으로써 

살아있는 후손들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죽어서나마 후손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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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장묘문화(葬墓文化)는 바뀌어야 한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재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장례사 과정과, 사주팔자와 작명과정, 그리고 명리학 최고연구과정을 가르치고 있는 구홍덕이라고 합니다.  저는 소위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리고 사후 세계까지를 담당하고 있다고들 말을 합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위대한 분들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께서는 이미 젊음을 자녀들을 위하여 바치셨고, 또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바치신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나 죽고 난 뒤에 진수성찬을 차려 주면 누가 알 것이여?'라고들 말합니다.  우리 세대까지는 산소에 찾아다니면서 벌초도 하고, 성묘도 하니까 별로 그렇게 염려가 되지 않습니다마는, 앞으로 다음 세대는 과연 누가 얼마나 산소에 찾아다니면서 벌초도 하고 성묘도 할지 의문입니다.


현재 각 지역에서는 벌초를 대신해주는 대행업체가 생겨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지금 일부에서는 성묘를 가는 대신에 괌이나 싸이판으로 가족들이 놀러 간다고 합니다.  그곳 현지 호텔에서 한국 사람들을 위하여 차례 상을 하나 준비해서 호텔 로비에 차려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돈 있는 사람은 호텔측에 주문만 하면 차례 상을 한 상 차려 객실로 가져다 준다고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노트북 열어놓고 제사 상 그림을 띄워 놓고 차례를 지내는 사람도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반드시 해 놓고 돌아가셔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 군데 흩어져 있는 산소를 한군데로 모아 납골묘를 만들어 놓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여러 번에 걸쳐 행해지고 있는 제사도 한 날로 묶어 합동제사로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상놈들이나 하는 짓거리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마는, 그런 분들께서는 앞으로 제삿날 물 한 그릇 못 얻어 잡수실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왜 그리 해야 하는지는 다음에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제 1 장 서론(序論) - 장묘(葬墓)의 종류(種類)


현재(現在) 문명화(文明化)한 모든 민족(民族)이 널리 시행(施行)하고 있는 장법(葬法)으로 그리스 시대(時代)에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히브리 민족(民族)에도 있었고(삼상 1:12∼13), 한국(韓國)에는 인도(印度)로부터 전하여졌다고 합니다. 


화장(火葬)하고 남은 유골(遺骨)을 흙에 묻기 때문에 엄밀하게는 토장(土葬)과 화장(火葬)만은 매장(埋葬)이라고 합니다.  화장(火葬)은 악령(惡靈)과 동물령(動物靈)을 막기 위한 영(靈), 육(肉)의 분리(分離)와 신앙(信仰), 그리고 화재(火災)의 습관(習慣) 등에서 시작(始作)되었다는 설(說)이 있습니다.  뼈를 추려 항아리나 상자(箱子)에 넣어서 땅에 묻기도 하고, 가루로 만들어 강(江)이나 산(山)에 뿌리기도 합니다.


유럽에서는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부터 있던 장법(葬法)이며, 일반적(一般的)으로 서유럽의 켈트족은 토장(土葬)을 하고, 튜튼사람은 화장(火葬)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BC 1000년경에는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도시(都市)에서도 토장(土葬)과 화장(火葬)이 병행(竝行)되었습니다.  그 후 그리스도교가 전파(轉派)되어 그리스도교의 유체 정화와 부활(復活)의 사상(思想)에 따라 화장(火葬) 풍습(風習)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교회(敎會) 묘지의 수용(收用) 증대(增大)와 묘지(墓地)의 거주지역(居住地域) 접근(接近) 등이 동기가 되어 19세기 말경부터 화장(火葬)하는 예(例)가 생기기 시작(始作)하여 유럽과 미국(美國) 각지(各地)에서 화장(火葬)이 증가(增價)하고 있습니다.  동양(東洋)에서는 불교(佛敎)의 진원지(震源地)인 인도(印度)에서 예로부터 불교(佛敎)의 장법(葬法)인 화장(火葬)이 유행(流行)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고대(古代) 중국(中國)에서는 화장(火葬)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나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에는 서역(西域)에서 불교(佛敎)가 전해지면서부터 화장(火葬)이 생긴 것 같으며, 송대(宋代)에는 그 수가 많아진 것으로 보이나 명말 청초(明末淸初)에는 점차 쇠퇴(衰退)하였고 지금은 중국(中國)에서 화장(火葬)하는 일이 극히 드문 현상(現狀)을 보이다가 공산당(共産黨) 정권(政權)이 들어서면서부터 정부(政府)에서 적극적(積極的)으로 권장(勸奬)하는 바람에 화장(火葬)하는 예(例)가 점차 증가(增加)했는데, 지금은 아예 법(法)으로 화장(火葬)만을 하게 규정(規定)지어 놓고 있습니다.


한국(韓國)에도 삼국시대(三國時代)에 불교(佛敎)가 중국(中國)에서 전래(傳來)된 뒤부터 다비(茶毘)라 하여 승려(僧侶)가 죽으면 화장(火葬)하는 풍습(風習)이 있었으나 일반인(一般人)들은 거의 토장(土葬)의 풍습(風習)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일제(日帝) 강점기(强占期)인 1912년‘묘지(墓地), 화장(火葬), 화장장(火葬場)에 관한 취체규칙'이 제정(制定)된 후부터는 일제(日帝)의 강요(强要), 묘지(墓地) 확보(確保)의 어려움 등으로 화장(火葬)을 따르는 예(例)가 있었으나, 오랜 전통적(傳統的) 풍습(風習)과 관념(觀念)을 일시(一時)에 변혁(變革)시킬 수는 없었고 대부분(大部分)이 계속(繼續) 토장(土葬)을 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인구(人口) 팽창(膨脹)에 따른 거주(居住) 지역(地域)의 확장(擴張), 농지(農地)와 임야(林野) 면적(面積)의 확보(確保) 등으로 묘지(墓地)의 절대(絶代) 면적(面積)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實情)이며 따라서 화장(火葬)을 하는 예(例)가 특히 대도시(大都市)를 중심(中心)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趨勢)입니다.

 

제 2 장 본론(本論) - 화장(火葬)의 필요성(必要性)  


1. 장례(葬禮)문화(文化) 개선(改善)의 필요성(必要性)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간(人間)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피(避)할 수 없는 하나의 숙명(宿命)입니다.  다만 우리 인간(人間)이 다른 동물(動物)과 다른 것이 있다면 모든 인간(人間)의 죽음은 생명(生命)이 소멸(消滅)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가 속(屬)한 사회(社會)마다 고유(固有)한 집단의식(集團意識)의 상례(喪禮)를 통해 민족(民族)이나 사회(社會)마다 각각(各各) 다르게 치러지는 것이 특징(特徵)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例外)는 아니어서 국토(國土)는 좁은데 죽을 때는 꼭 땅에 묻히길 원하므로 매년(每年) 여의도(汝矣島)의 3배에 달하는 국토(國土)가 무덤으로 바뀌고 있어 우리나라는 지금 심(甚)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또한 몇 년 전 여름 집중호우(集中豪雨)에 경기(京畿) 북부(北部)에서만 5천 여기의 묘지(墓地)가 유실(流失)되어 후손(後孫)들이 발만 동동 구르는 안타까운 모습(模襲)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모(某) 재벌(財閥) 회장(會長)의 장례(葬禮)를 화장식(火葬式)을 했던 것을 계기로 행정(行政)당국(當局)과 종교계(宗敎界)에서 화장(火葬)장려(奬勵) 분위기(雰圍氣)가 확산(擴散)되고 있습니다.  1998년 9월 1일 고건(高建) 서울시장은 KBS라디오 시사(時事)프로에 출연(出演)하여 서울시는 장묘(葬墓)문화(文化) 개선(改善)운동(運動)을 펼치고 있는 생활개혁실천범국민협의회(生活改革實薦凡國民協議會)와 협의(協議)하여 '화장(火葬)을 유언(遺言)으로 남기기 서명운동을 추진하여 묘지(墓地)로 인한 국토(國土)잠식(蠶食) 등 장묘 제도의 문제점(問題點)이 한계(限界)에 달하여 매장(埋葬)문화(文化)를 바꾸지 않으면 안될 시점(時點)에 왔다고 역설하며 자신도 이미 오래 전에 화장(火葬)을 하기로 유언(遺言)해 두었다'는 사실(事實)을 밝히면서 더욱 이 운동(運動)에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2. 짚어보는 우리의 장례(葬禮)문화(文化)


매장(埋葬)은 조상(祖上)의 음덕(蔭德)을 통해 후손(後孫)의 행복(幸福)을 기원(祈願)하는 전형적인 농경시대(農耕時代)의 유산(有産)입니다.  산업화(産業化), 도시화(都市化)된 현대사회(現代社會)에는 변화(變化)된 환경(環境)에 걸맞은 새로운 장례(葬禮)문화(文化)가 요구(要求)됩니다.

 

3. 피할 수 없는 죽음


누구나 태어나서(生), 늙고(老), 병들어(病), 결국(結局)은 자연(自然)으로 돌아가는(死) 유한(有限)한 존재(存在), 인간(人間) 세상(世上) 만물(萬物) 중 죽음에 대하여 가장 큰 의미(意味)를 부여해 온 것은 바로 우리 인간(人間)들입니다.  지역(地域)에 따라 절차(節次)나 방법(方法)의 차이(差異)는 있을 지라도 각 민족(民族)은 나름대로의 죽음에 대한 독특(獨特)한 의식(儀式)을 행하여 왔습니다.

 

4. 장례(葬禮)를 후(厚)하게 치른 민족(民族)


불교(佛敎)문화권(文化圈)에 속(屬)하는 한국(韓國)은 중국(中國), 일본(日本)과 더불어 불교(佛敎)의 본질(本質)인 생명(生命)의 연속성(連續性)을 중시(重視)해왔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선조(先祖)들은 '나'와 조상(祖上)과의 관계(關係)가 죽음으로 인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손(後孫)이 존재(存在)하는 한 영원(永遠)히 이어지는 것으로 보고, 사자(死者)에 대한 예우(禮遇)를 극진(極盡)히 하는 것을 당연(當然)한 일로 여겨왔습니다.

  

5. 명당(明堂)과 씨족(氏族) 이기주의(利己主義)


정착(定着) 농경민(農耕民)의 보편적(普遍的) 특징(特徵)인 조상(祖上)의 무덤은 자기 위치(位置)에 대한 강렬(剛烈)한 표현(表現)이었으며 땅의 이치(理致)를 좇아 소위 '명당'(明堂)이라는 곳에 매장(埋葬)함으로써 자손대대(子孫代代)로 부귀(富貴)를 누리고자한 매장(埋葬)문화(文化) 는 혈연(血緣)에 근거(根據)한 씨족(氏族) 집단적(集團的) 이기주의(利己主義)를 반영(反映)하고 있습니다.

   

6. 껍데기만 남은 장례(葬禮)문화(文化)


 요즘의 우리 생활(生活)은 어떠한가? 조상(祖上)의 묘(墓) 찾기란 일 년(一年)에 한 두 번 벌초(伐草)가 전부(全部)이며 젊은 세대(世代)는 큰 일을 당했을 때 어찌할 바 모르고 당황(唐惶)할 뿐입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성함(姓銜)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합니다.  변화(變化)된 세상(世上)에 걸맞은 새로운 장례(葬禮)문화(文化)가 요구(要求)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풍수지리(風水地理)의 현대적(現代的) 해석(解釋)이 필요(必要)하며, 좋은 묘 자리가 과연(果然) 부귀(富貴)를 가져오는가, 땅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무대(舞臺)일 뿐, 모든 것은 사람 자신(自身)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7. 화장(火葬)의 역사(歷史)


불교(佛敎)의 화장(火葬) 제도(制度)를 다비(茶毘)라고 하는데, 다비(茶毘)란 인도(印度) 말을 우리말로 음역(音譯)한 것으로 시체(屍體)를 불태우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화장(火葬) 제도(制度)는 통일신라(統一新羅)의 문무왕(文武王)의 유언(遺言)에서 비롯되어 800여 년 동안 지속(持續)되다가 조선(朝鮮) 성종(成宗) 때 금지(禁止)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시신(屍身)을 땅에 묻는 매장(埋葬) 풍습(風濕)이 유행(流行)하고 있으나, 우리 민족(民族)에게는 매장(埋葬)과 화장(火葬)이 둘 다 생소(生疎)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유교(儒敎)에서는 '신체(身體)의 모든 부분(傅粉)은 부모(父母)에게 받았으므로 손상(損傷)없이 간직하는 것이 효행(孝行)의 시작(始作)'이라고 하여, 화장(火葬)을 기피(忌避)하는 반면(反面), 조상(祖上)의 묘(墓)를 좋은 곳에 호화롭게 꾸미는 것을 효행(孝行)의 본보기로 여깁니다.


그리스도교의 경우, 영혼(靈魂) 불멸(不滅)과 육신(肉身)의 부활(復活)을 믿기 때문에 화장(火葬)을 꺼려하는 경향(傾向)이 신자(信者)들 사이에 매우 강하지만, 부활(復活)한 육신(肉身)과 생전(生前)의 육신(肉身)이 질적(質的)으로 전혀 다르다는 점을 염두(念頭)에 두면, 교리상(敎理上)의 이유(理由)로 화장(火葬)을 배격(排擊)할 필요(必要)는 없습니다.


그러나 천주교(天主敎)는 화장(火葬)을 금(禁)하지 않습니다.  현재(現在) 천주교(天主敎)에서는 성 라자로 마을, 대구 군위천주교묘지, 수원교구 소속 경기도 안성공원묘지, 서울대교구 소속 용인공원묘지 등에 납골당(納骨堂)이 운영(運營)되고 있거나 설립(設立) 추진(推進) 중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여느 종교(宗敎)의 신자(信者)들은 매장(埋葬)을 선호(選好)하는 국민(國民) 성향(性向)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일찍이 시행(施行)되고 있는 납골당(納骨堂) 제도(制度)가 활성화(活性化)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現實)입니다.

 

제 3 장 결론(結論) - 바람직한 장묘(葬墓) 문화(文化)   


우리나라에서 현재(現在) 묘지(墓地) 1기당 차지하는 평균 면적은 약 15평, 1인당 평균 주택 면적은 4.3평으로 이는 3배가 넘는 면적입니다.  현재(現在)의 장묘(葬墓) 관행(慣行)이 지속(持續)된다면 수도권은 3년 내에 집단(集團) 묘지(墓地) 공급(供給)이 한계(限界)에 도달(到達)할 것으로 정부(政府)는 추정(推定)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모범(模範)을 보여야 할 사회(社會) 지도층(指導層) 인사(人士)들이 앞다퉈 농지(農地) 등의 임야(林野)에다 몇 백 평에 걸쳐 수십 억 원을 들인 호화(豪華)스러운 사당, 돌 장식, 진입계단 등의 거대한 석조물과 연못 등을 만들고, 심지어 헬기 착륙장까지 설치해 물의를 빚고 있기도 합니다.


매년 묘지(墓地)로 늘어나는 면적은 여의도(汝矣島)의 3배가 묘지(墓地)로 잠식(蠶食)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땅의 5.2%이상이 묘지(墓地)로 뒤덮이고 있어, 죽은 자가 차지하는 면적(面積)이 산 자의 면적(面積)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연고(緣故) 없이 방치(放置)된 무연고 묘지(墓地)가 전체묘지의 40%에 달하는 800만기에 달하므로 후손(後孫)들의 불효(不孝)를 탓하기 전에 근본적(根本的)인 해결책이 필요(必要)하다고 하겠습니다.


불법(不法) 호화분묘(豪華墳墓)는 자연환경(自然環境)을 파괴(破壞)하는 것은 물론 심각(深刻)한 묘지(墓地) 수급난(需給難)을 부추기는 원인(原因)이 되고 있습니다.  사실(事實)을 알고 보면 장기간의 매장(埋葬)은 시신에게 오히려 해로운 것으로, 이장을 경험(經驗)해본 분들은 봉분(封墳) 속의 시신(屍身)을 보고 경악(驚愕)을 금치 못할 때가 있음을 경험(經驗)해 보신 분들이 많을 것인데, 이승보다 더욱 편안해야 할 시신이 나무뿌리와 해충(害蟲), 습기(濕氣)의 침해(侵害)로부터 심하게 훼손(毁損)된 경우가 다반사(茶飯事)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1998년 여름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인해 9,400여기의 묘(墓)가 수해(水害)를 입었고 200여 구의 시신유실(屍身流失)은 후손(後孫)들에게 씻지 못할 뼈아픈 상처(傷處)를 안겨 주었습니다.  현재(現在) 우리나라의 묘지(墓地) 면적(面積)은 국토(國土)의 1%인 982㎢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전국(全國) 공장(工場) 터의 3배이고, 서울시 면적(面積)의 1.5배에 달하며 매년(每年) 20여 만기의 분묘(墳墓)가 발생, 여의도(汝矣島)의 1.2배인 9㎢이 묘지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 연(年) 장묘(葬墓) 관련(關聯) 총 비용(費用)은 약 1조7000억 원으로 1건당 장묘(葬墓) 비용(費用)은 약 700만원정도로 추정(推定)되는 등 막대(莫大)한 경제적(經濟的) 부담(負擔)을 치르고 있습니다.  납골당(納骨堂)에 대한 사회(社會) 인식(認識)의 변화(變化)로 최근 들어 몇몇 업체(業體)가 한국적(韓國的) 정서에 들어맞는 한국형 납골당(納骨堂)을 선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상(祖上)을 돌보는 후손(後孫)들이 쉽게 찾고 관리 또한 제대로 할 수 있는 등 장점(長點)이 많이 있습니다.


또 조상(祖上)을 멀리 떨어진 산에 모셔 거친 자연환경(自然環境)과 천재지변(天災地變) 속에 유실(流失)될 것을 염려(念慮)하는 심정(心情)으로 고통(苦痛) 받는 것보다 화장(火葬) 후 납골시설(納骨施設)에 모시면 가족(家族)이나 친지(親知)들이 자주 한자리에 모여 가족유대(家族紐帶)를 강화(强化)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묘지(墓地)의 심각성(深刻性)은 이미 사회적(社會的) 과제(課題)가 되어왔고 정부(政府)에서도 장묘제도(葬墓制度) 개선(改善)을 위한 다각적(多角的)인 노력(努力)을 기울이고 있음은 주지(主旨)의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가 장묘(葬墓) 문화(文化)와 관련(關聯)하여 진지하게 성찰(省察)해야 하는 것은 우리 삶의 토대(土臺)를 이루고 있는 자연환경(自然環境)과의 조화(調和)에 대한 것입니다.


인류(人類)가 생명공동체(生命共同體)의 중심적(中心的) 존재(存在)로서 책임의식(責任意識)을 갖는다면, 지금 우리의 장묘(葬墓) 관행(慣行)은 육탈(肉脫) 매장(埋葬) 및 화장(火葬)으로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現在) 22퍼센트에 달하는 화장률(火葬率)이 지속적(持續的)으로 증가(增加)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민의식(國民意識) 변화(變化)를 위한 노력(努力)이 절대적(絶對的)으로 필요(必要)합니다.


미래(未來)는 갑자기 도래(到來)하는 것이 아니라 예비(豫備) 되어지는 것이므로 장묘(葬墓) 문화(文化)는 우리와 우리의 후손(後孫)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시대(未來時代)를 예비(豫備)하는 진지한 노력(努力) 속에서 새롭게 정립(定立)되어질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납골묘(納骨墓)는 전국(全國)을 묘지강산(墓地江山)으로 바뀌는 것을 위한 최선(最善)의 장례의식(葬禮儀式)일 뿐 아니라 현대인(現代人)의 문화(文化)에 맞는 방법(方法)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國民)들의 의식(意識)으로는 고인(故人)이 돌아가신 후 곧바로 화장(火葬)을 하여 납골묘(納骨墓)에 모신다고 하는 것은 정서적(情緖的)으로 맞지 않으므로, 약 15년 정도(程度) 매장을 하였다가 흔히 말하는 이장(移葬)을 할 때 다른 묘지(墓地)를 조성(造成)하지 말고 그때 화장(火葬)을 하게 하여 납골당(納骨堂)에 모시게 하는 방안(方案)이 강구(講究)되어야 할 것이며, 특히 이러한 장묘개혁운동(葬墓改革運動)은 일반(一般) 서민층(庶民層)이 아닌 사회(社會) 지도층(指導層) 인사(人士)들부터 솔선수범(率先垂範)하여야 되리라고 보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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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하나 : http://keyword.pressian.com/articleK.asp?guide_idx=3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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